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고전5장_순전함과 진실함

  • 느헤미야강
  •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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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6() 새벽기도회

 

순전함과 진실함 <고전5;1-8중심으로>

 

고린도전서 5,6장은 고린도교회의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권면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특징은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세상적 즐거움가운데 살고 사람들이었습니다.

여전히 세상것을 추구하고, 세상것들로 왕 노릇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내가 왕 노릇하려니 대립하게 되고 거기에서 분열, 분쟁이 생겼습니다.

스스로 왕이기에 기준이 오직 자기입니다.

 

1절은 고린도교회 타락중 음행을 지적합니다.

아비의 아내(계모, 첩이었을 것)와 음행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성경은 음행에 대해서 엄격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중에 제7계명이 간음하지 말라.

구약에서는 음행하다 잡히면 돌려 쳐 죽이라 했습니다.

음행은 거룩한 성전인 자신을 죽이는 것이고,

잠언 6;32절에는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상대의 육체와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과 상대방의 가족을 죽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음행은 상대방이 여자이면 그 남편을,

남자이면 그 아내를 죽이는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것은 그 여자가 자신의 충직한 부하

우리야의 아내인 것을 알고도 범했습니다.

그때 전쟁터에서 죽이기 전에 이미 죽인거나 다름없습니다.

압살롬이 쿠테타를 일으켜 아버지목에 칼을 겨누었으나

다윗이 겨우 궁을 빠져나가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아히도벨이 선친의 아내를 온 백성이 보는 옥상에서 범하면

이 나라가 당신의 것임을 알게 된다고 하자 그렇게 합니다.

압살롬은 그렇게 칼이 아니라 아버지를 이미 죽인거나 다름없습니다.

 

이렇게 음행은 자신과 상대방의 육신과 영혼을 죽이고

상대방의 가족, 상대방의 남편이나 아내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엄격하게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도의 범죄는 반드시 공개적으로 드러납니다.

고전1;1 이 남자는 고린도교회 성도입니다. 상대는 계모, 첩입니다.

같은 집에 사는 사람입니다.

어제 음행을 저지르고 오늘 아침 같은 식탁에 앉으면

상대방의 어떤 모습이 보일까요?

그들은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니

아버지, 형제들 모르게 은밀한 장소를 찾았을 것입니다.

은밀한 시간을 택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들통난 것입니다.

 

그 소식이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까지 그 소식이 들렸습니다.

1절에 들으니라는 말은 반복해서 계속 들린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은밀하게 행했을 일이 어떻게 이렇게 알려지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안계시면 이 세상문제는 감쪽같이 덮여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하나님앞에 덮여버릴 문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자녀를 사랑하시기에 자녀들에게는 엄격하십니다.

왜 엄격하십니까?

범죄 들통나 수치를 당함으로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 12;8절은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적자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잘못을

더 엄하게 하실때가 있으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하나님과 더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이 여기지 아니하고 그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음행자체도 언급하나 교인 잘못에 대한 교회 잘못을 꾸짖는 내용입니다.

어찌하여 음행한자를 물리치지 않고 가만히 놔 두었으냐.

에베소까지 소문났는데 누구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냐.

너희들은 대수롭지 않게 대처했다. 그것은 교만해서이다.

교만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이 두는 것입니다.

무슨말인가하면, 그들은 음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으나

다른 죄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음행을 저지른 사람들의 범죄가 대단한 죄가 아닙니다.

결국 교린도 교회는 스스로 순결함을 상실한 것입니다.

교회의 능력, 힘은 순결함에서 시작됩니다.

교회가 순결을 상실하면 세상보다 더 추해집니다.

세상에서 출세만을 목적 삼는 사람은

세상 논리를 쫓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역사를 새롭게 하지 못합니다.

권력이 주어져도 못합니다.

역사를 일으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속에서 순결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인류 역사는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워졌습니다.

 

3-5절은 교회가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4절하반절에서 5,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예수의 능력으로 출교시키라는 말입니다.

당시 최고의 망신은 출교입니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면

하나님앞에서 영적 성숙자로 바로서게 하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6절 이하에 나오는 누룩은 죄를 말합니다.

작은 죄일지라도 다른 죄를 짓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염시킵니다.

예수 보혈로 새 사람된 사람은 묵은 누룩,

옛 사람의 삶을 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 순결함은 순전함과 진실함 두 단어로 귀결됩니다.

순전함이란 태양빛 아래 부끄러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실함(알레테이아)감추지 않는 것입니다.

태양앞에 부끄러운 없는 것, 감추는 것 없는 사람. 이것이 순결입니다.

 

교회는 제도나 건물이 아닙니다. 사람이 교회입니다.

우리 각자가 순전함, 진실함의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 간음한 여인을 사람들이 죽이려 할 때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치라 했습니다.

내가 순결한 사람이 되지 않고

죄로 죽어가는 자에게 죄를 지적하고 세울 수 없습니다.

내가 순결한 사람이 될 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 향한 쇼 윈도위입니다.

그안에서 사랑을, 세상과 구별된 순결함을 드러낼 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그 힘에 영향받고 감동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존재 자체를 숙연하게 하는 곳은 드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이곳에 포진시켜 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 순결, 진실함 보일 때 세상을 숙연케하는 교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