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고후2장_지금 이곳이 선교지, 땅끝입니다
- 느헤미야강
- 20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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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후 2장에서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증과 더불어
영광스러운 복음의 의미와 내용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곧 방문할 것이라는 자신의 계획이 변경되었는지를 변증하면서
그것은 고린도교회와 성도를 아끼는 마음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회안에서 회개하고 돌아온 성도를 용서하라는 권면으로 이어집니다.
이어서 오늘 제가 주목하고 싶은 말씀이 2;12,13절 말씀입니다.
12절에 의하면 3차 전도여행중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드로아에 갔습니다.
에베소서에 있을 때 글로에로부터 교회 소식을 받고 디모데를 통해 고린도전서를 보냈습니다.
디모데가 보고하기를 문제해결이 안되고 더 악화되었다 했습니다.
그래서 눈물의 방문이 이루어졌으나 오히려 더 배척받고 돌아와 눈물의 편지를 디도편에 써 보냈습니다.
교회가 잘못된 것을 회개하고 바른 신앙으로 돌아오기를 권했습니다.
그 후 드로아로 올라갔습니다. 이유는 디도를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눈물의 편지를 가지고 간 결과를 가지고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드로아에 간 목적에 대해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라고 말합니다.
드로아에 간 이유가 디도를 만나 고린도교회의 상황을 듣고자 한 것인데
그것을 ‘복음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고린도후서 2;12,13절 말씀을 통해서 바울이 주는
선교의 개념에 대한 귀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무엇을 하든 예수 복음을 위한 것이었습니니다.
2차 전도여행중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고, 편지를 보내며,
두 번째 잠깐 방문하고 바로 돌아와 눈물의 편지를 보내고,
그 결과를 알기 위해 디도를 만나기로 한 것도 다 예수 복음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바울은 무슨일을 하든지 예수 생명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어디에 있든지 서 있든지 그곳이 땅끝이요 선교지였던 셈입니다.
바울이 어디에 있든지 서 있는 곳에서 생명역사 일어났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지
긍긍적 목적이 예수 복음의 증인이라면 내가 서 있는 그곳이 땅끝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번 여름이 비전트립을 계획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선교를 강조합니다. 땅끝까지 가야 한다.
열방으로 가야한다고 목소리 높입니다. 선교의 사명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땅끝은 하나님없는 사람, 하나님 없는 마음, 하나님 없는 가정이면 다 땅끝입니다.
지구는 둥급니다. 원입니다. 내가 어느쪽으로 가든 계속가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복음을 위해 살아간다면 내 집도 땅끝이고 우리 역시 선교사입니다.
내 일터, 사무실, 학교가 땅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내선교는 묻어두고 외국으로 나가야만 선교라는 인식을 하는데
이것은 선교에 대한 바른 이해가 아닙니다.
내 옆의 사람에게는 복음전하지 않고 멀리가야만 선교한다는 생각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가 밤낮으로 복음을 위해서 산다면 선교에 대한 공간개념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전도와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대화 중에 우리 모두가 범하고 있는
세 가지의 모순이 드러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첫 번째는 많은 교회들이 단기선교, 비전트립을 합니다.
국내 혹은 해외 선교지에 찾아가서 봉사 활동을 하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여비는 대부분 각자가 부담하고 사역비는 교회가 감당합니다.
그러므로 단기 선교에 참여하자면 적지 않은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희생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 여행에 참여하는 이유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함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먼 나라에 가기 위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기꺼이 희생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도 그렇게 해야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혹은 직장에서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단기 선교에는 많은 돈과 시간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는 순간 선교적 열정을 내려 놓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 복음을 전할 열정은 있는데,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심하다면 이만 저만한 모순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는 선교현장을 다녀온 후에
“어떻게 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할 수 있을까?”를 두고 생각을 나누게 됩니다.
그에 대한 한 방법으로서 믿지 않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
친구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무심코 살다 보면 믿는 사람들과만 지내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 주변에는 모두 믿는 사람 뿐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주합니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사람을 찾아 친구가 되고
인격적인 사귐을 나누어 복음을 전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 일은 선교현장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라 내 주위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 공감할 때 해외 선교는 더 의미 있게 됩니다.
세 번째, 선교는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로 모였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바깥에 나가서 전도할 수 있을까요?
물론 먼 곳에 있는 이들에게 더 마음이 가고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각자에게 주신 은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먼저 교회 안에서
서로 인사를 주고 받는 것부터 시작하는 일입니다.
교회로 모였을 때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바깥에 나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 전도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교회로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사귀는 것이
전도를 위한 준비 훈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교회로 모여 누구와 만나시고 누구와 인사하셨습니까?
다른 사람이 내게 다가와 말 걸어 주기를 기다리지 마시고
낯선 교우를 찾아가 인사를 나눠 보시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면, 우리 교회를 찾는 분들이 정착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며
또한 바깥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 사귈 수 있도록 훈련될 것입니다.
그곳이 땅끝이며 우리의 선교지의 출발이 되어야 합니다.
선교를 안하기 때문에 부흥이 안되는 것이 아니라
선교의 마인드가 잘못되어 있기에 부흥이 안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해봅니다.
우리의 선교의 시작은 지금 여기서부터입니다.
가정, 일터, 학교, 지금 서 있는 곳이 선교지이고 땅끝입니다.
한 사람을 위해 전화하고 친절하게 대하며 대접하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우리에게 찾아온 이들을 가장 따듯한 모습으로 대하고 맞아주는 것에서부터가 선교입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보듯 익숙한 자리에서 떠나는 것부터가 선교의 시작입니다.
복음이 궁극적 목적임을 알고 행하는 모든 자리가 선교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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