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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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특새(1) 열매는 말씀으로 내 심령 갈아앞을 맺힙니다_막11;12-19

  • 느헤미야강
  • 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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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6()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1)


열매는 말씀으로 내 심령 갈아엎을 때 맺힙니다 <마가복음 11;12-19>

(내용; 예루살렘 입성, 무화과나무 비유, 성전 뒤 엎으심)

 

1. 

이번 한주간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행적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닮아야 하는지,

닮아야 할 삶을 우리 마음에 삶의 자리에 담아내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주님을 담으면 주님을 닮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다같이 첫째날 제목을 함께 읽겠습니다.

열매는 말씀으로 내 심령을 갚아 엎을 때 맺힙니다.”

 

2. 

먼저 오늘이 화요일이기에 주일 행적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11;1-2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 베다니에 이르자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어디에 가면 나귀 새끼가 매여 있을 것이다.

누가 뭐라하면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하셨습니다.

7, 제자들이 말씀대로 나귀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안장 삼게 했습니다.

이어 예수님께서 나귀에 타셨습니다.

 

왜 하필이면 나귀입니까?

구약에 예언된 말씀을 성취이고,

또 하나 이스라엘은 왕권을 상징할때에 나귀를 탔습니다.

나귀를 탄다 하면 내가 왕이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며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왕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8, 예수님을 보자 예루살렘 주민들은 예수님이 타신 나귀앞에

그들의 겉옷을, 어떤 이들은 나뭇가지를 길에 펼쳐 놓았습니다.

9,10,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호산나 호산나 외치며 열광적으로 환영했습니다.

호산나란 지금 구원해 주십시오 라는 뜻입니다.

같은 본문을 표현하고 있는 마태복음 21장은

온 예루살렘에 소동했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소동했다는 말은 지축이 흔들렸다는 말입니다.

그 정도로 열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그 일행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가죽 안장대신 남루한 옷,

바닥에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겉옷과 나뭇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코미디입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 사람들은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지축이 흔들릴 정도로 환영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가 메시야임을 알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신통력을 행했다는 것을 익히 들었고 어떤 이들은 보았습니다.

그 예수라면 내 갈급함, 욕망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예수님께 투사한 것입니다.

자기욕망으로 예수님의 허상을 만들고 열광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실상을 보고 열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욕망에 열광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욕망이 채워지지 않자 닷새후에

예수님을 못 박아 죽였습니다.

열광했던 자들, 죽이라 했던자들은 똑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을 깨닫게 해줍니까?

사람은 저마다 하나님께 허상을 가지고 삽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도외시하고 자기 욕망의 허상을 붙잡고

이 허상을 깨지 않으면 하나님을 결코 만날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예수님 오셔서 자기 욕구를

충족시켜주시지 않으실 때 빨리 허상을 버리고 실상을 붙잡아야 했는데,

허상을 붙들고 실상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사건의 핵심입니다.

오늘도 내가 주님의 허상을 버리지 않으면

내가 주님을 위한 열심히 특심인만큼

나는 계속 예수님을 못 박을 수 있습니다.

 

3.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날이 저물자 베다니로 나가셨습니다.

12절 이튿날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베다니에서 나오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조반을 못하셨는지 시장하셨는 듯 했습니다.

13, 먼곳에 무화과나무가 보였습니다.

앙상한 가지만 보이면 안가셨을텐데

나뭇잎이 있어 가보니 열매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때에 무화과의 열매가 맺을 때가 아님이라고 했습니다.

14, 예수님은 열매없음을 보시고 그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이제부터 그 누구도 열매 따먹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0, 날이 저물고 성 밖으로 나갔다가 아침에 그리로 지나가니

무화과무가 뿌리채 마른 것을 보았습니다.

 

무화과나무 철이 아니니 열매가 안 맺혔다면 당연한 것인데

예수님은 왜 저주했을까요?

무화과나무의 특징을 모르면 오해할 수 있습니다.

무과과나무는 봄철 5월말에서 6월이 되면

그때 제대로 된 열매를 맺습니다.

3월부터 무화과나무에 먼저 예비 열매가 맺힙니다.

이것이 맺혀지면 그곳에 잎이 나고

5월말에 무화과나무 본 열매가 맺힙니다.

봄철이 되면 부자들은 먹을 것이 넉넉하기 다른 것을 먹고

5월 말이 되면 제대로 된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서민들은 봄철에 먹을 것이 없으니,

3월부터 무화과나무의 예비 열매를 따 먹음으로 양식을 보충합니다.

 

예수님이 멀리서 보니 무화과나무 잎이 보였습니다.

잎이 있다는 것은 예비 열매가 맺혔다는 것입니다.

예비열매가 맺혀야 잎이 나기 때문입니다.

가보니 예비 열매가 없습니다.

이것은 그 해에 본 열매도 못 맺는다는 뜻입니다.

일년 내내 사람들에게 필요한 본 열매는 못 맺고

잎만 무성한 채로 있게 된다는 그 말입니다.

유실수의 가치는 결실에 있습니다.

유실수인 무화과나무가 예비 열매가 없을때는

필요없다 버리시는 것입니다.

당연히 큰 열매도 맺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서

큰 열매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예비 열매를 기대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큰 열매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작은 것을 먼저 기대하십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잔 줄 수 있는 작은 열매입니다.

혼자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손 잡아주는 작은 열매입니다.

괴로운 사람을 찾아 웃어주며 힘 주는 작은 열매입니다.

그 작은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그 작은 열매 맺을 수 있는 사람만 본 열매인 큰 열매 맺는 것입니다.

그 작은 열매 맺지 못하면 큰 열매 맺지 못합니다.

내가 아무리 신앙열심이 있고 교회 다녀도

작은 열매 없으면 주님 요구하시는 열매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절제의 열매는 맺을 수 없습니다.

 

4.

15,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사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17,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은 강도의 소굴이었습니다.

장사꾼 천지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기때가 되면 제물을 바쳐 제사를 드립니다.

사람들이 어떤 제물을 가져와도 퇴짜를 놓고는 비싸게 사도록 했습니다.

헌금을 드릴때에 성전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따로 만들어

환전을 하게 하여 막대한 이윤을 추구했습니다.

그 배후에는 대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사회 자체가 강도요 이익집단이었기에

예수님이 그 성전을 엎으신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이미 주일에 성전을 다 보셨습니다.

보시자마자 엎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루 동안 충분히 생각하신 후 엎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는 공생에시작하실때에 성전을 엎으셨습니다.

3년이 지나서 공생에 끝에 또 엎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지를 잘 보여줍니다.

3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습니다.

 

이사야 56;7절은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16절은 우리가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매일 주님의 말씀으로 둘러 엎지 아니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도 강도의 소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네 종류의 밭과 씨 비유가 나옵니다.

오직 옥토밭만 씨가 결실을 맺습니다.

다른 세 밭과 옥토밭의 차이는 토지를 둘러 엎어 놓은 것입니다.

내가 말씀과 기도로 갈아어을 때에만 내가 옥토되고,

진정한 성전이 되며, 나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믿는사람들도 믿음의 나무가 되었으면,

무화과나무 잎이 있으면 작은 열매가 있어야 하듯 열매 있어야 합니다.

없다면 무화과나무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 했습니다.

 

앞의 세가지 내용을 연결시켜 보겠습니다.

내가 주님 허상을 붙잡는 한

우리 삶에 지극히 작은 열매 하나도 맺을 수 없습니다.

내 삶 지극히 작은 열매 맺지 못하면

하나님은 강도의 소굴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욕망, 자기 이기심으로만 채운 까닭입니다.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습니까?

거꾸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말씀으로 내 심령 갈아 엎으면

작은열매 맺히기 시작합니다.

내 마음 옥토밭 되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열매 맺혔다는 것은

내가 이미 주님의 허상을 버렸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허상을 붙잡는한 열매 안맺힙니다.

 

허상이 아니라 실상을 마음에 담으십시오.

큰 열매 구하기 전에 작은 열매를 마음에 담아 실천하십시오.

말씀과 기도를 담아야 열매를 맺습니다.

실상, 작은 열매, 말씀과 기도를 담으십시오.

 

오늘의 기도

1. 매일 매일 내 심령을 말씀으로 둘러 엎게 해 주십시오.

2. 참된 성전으로 지극히 작은 열매 맺게 해주십시오.

3. 주님의 허상을 버리고 실상이 함께 하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오늘의 말씀 필사: 마가복음 11;13,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