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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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1(수) 현실에 기도한 믿음, 고린도전서 11;23-26
- 최고관리자
- 202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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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는 은사와 지식이 풍부했지만, 공동체 내 갈등과 무질서도 심했습니다. 특히 성만찬 자리에서 빈부 차별이 드러났습니다. 부유한 자들은 먼저 와서 배불리 먹고, 가난한 자들은 뒤늦게 와 굶는 일이 있었습니다(고전 11:20–22). 성만찬이 공동체의 하나 됨을 나타내야 하는데, 오히려 분열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주님께 “받은 것”을 전한다고 하며,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 즉 십자가를 앞둔 마지막 밤의 만찬을 회상합니다.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을 나누며, 새로운 언약의 성취를 선포하십니다. 유월절 어린양처럼 자신이 희생 제물이 되심을 밝히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떡을 떼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 그리고 잔을 드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이 순간은 단지 의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단순한 교리가 아닌,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살았고, 실제로 제자들과 식사를 나누셨고,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은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오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아파하고, 결국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님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강하게 요청합니다. 성찬을 기억하되, 그것이 단순한 ‘형식’이나 ‘행위’로 끝나지 않도록 하라고. 너희가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는 것은 곧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일이라고.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연극처럼 따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분의 희생을 현재의 삶 가운데 되살리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억하면서, 나는 오늘 어떤 관계에서 화해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오늘 섬겨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그분의 은혜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바울이 강조한 믿음은 구체적인 현실을 가진 믿음이었습니다. 공허한 종교적 감정이 아니라, 실제 사람과의 관계, 실제 사건과의 연결 속에서 살아가는 살아 있는 신앙이었습니다.
성찬은 ‘기억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 기억은 단지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 있는 기억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매번 떡을 떼고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우고, 내 삶을 다시 복음 위에 세우게 만듭니다.
바울처럼, 나도 오늘 현실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믿음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그러므로 나는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삶으로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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