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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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30(금), 잃어버린 자를 찾으심, 누가복음 19;1-10

  • 최고관리자
  • 2025-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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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던 마지막 여정 중, 여리고라는 도시를 지나가셨습니다. 이 여리고는 고대부터 상업과 통행의 중심지였고, 로마 제국 아래에서 세금 수입이 많은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그곳에는 삭개오라는 이름의 세리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로마 정부를 위해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하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세리들은 종종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고, 동족을 배반하는 자로 여겨졌기에, 사회적으로 철저히 고립된 존재였습니다. 삭개오는 그중에서도 세리장이었고, 크게 부자였기에 사람들의 눈에는 더욱 타락한 인물로 비쳤습니다. 

그러나 삭개오의 마음속에는 변화의 갈망이 있었는지 단순한 관심이었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무엇이었든지 사람들 사이에 설 수 없자 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몸을 움직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여기에서 삭개오가 나무에 올라간 행위를 강조하여 그처럼 주님을 향한 갈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핵심은 사람들은 그를 무시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외면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를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19:5)

이 말씀은 단순한 방문의 선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 죄인에게 다가오신 은혜의 사건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아갔지만, 본질적으로 먼저 다가오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군중 속의 소외된 자를 보셨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으며, 그와 함께 거하시겠다는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삭개오는 기쁨으로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이 기쁨은 단순한 손님의 방문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자기 존재가 받아들여졌다는 감격,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삶을 변화시키는 길을 제시했다는 희망에서 나오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나이다.” (19:8)

이 말은 단지 감정적인 반응이나 외적인 행위의 약속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와 회심의 열매였습니다. 자신의 탐욕을 내려놓고, 정직과 나눔을 택한 삶으로 돌아서겠다는 결정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내면의 변화가 실제 삶의 방향 전환으로 이어진 회복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사역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9:10)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단지 도덕적인 가르침을 주시거나, 착한 사람을 격려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 사회와 종교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을 하나님께로 다시 인도하기 위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찾음의 과정은 언제나 먼저 다가가시는 사랑, 이름을 부르시는 자비, 함께 거하시는 은혜로 나타났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이들이 영적으로 잃어버린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우리가 보기에 악한 사람, 실패한 사람, 혹은 멀리 있는 사람들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예수님은 그런 이들을 찾고 계십니다.그리고 오늘도 우리의 주변에, 어쩌면 아주 가까운 곳에 삭개오처럼 먼저 다가와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설교나 복잡한 논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저 진심어린 초대 한 마디, 혹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사람, 혹은 함께 식사하며 공감해 주는 한 친구일 수 있습니다. 그 한 걸음의 다가감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우리가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며, 예수님의 목적에 함께 참여한다면, 우리 삶도 찾아가는 복음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