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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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 에스겔 22;17-31
- 새생명
- 20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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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건
에스겔 22:17-31
17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8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꺼기가 되었나니 곧 풀무 불 가운데에 있는 놋이나 주석이나 쇠나 납이며 은의 찌꺼기로다
19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다 찌꺼기가 되었은즉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으고
20 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쇠나 납이나 주석이나 모아서 풀무 불 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노여움과 분으로 너희를 모아 거기에 두고 녹이리라
21 내가 너희를 모으고 내 분노의 불을 너희에게 불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되
22 은이 풀무 불 가운데에서 녹는 것 같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으리니 나 여호와가 분노를 너희 위에 쏟은 줄을 너희가 알리라
2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4 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25 그 가운데에서 선지자들의 반역함이 우는 사자가 음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그 가운데에 많게 하였으며
26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 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27 그 가운데에 그 고관들은 음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28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였으며
29 이 땅 백성은 포악하며 강탈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였으며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으므로
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22장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불의에 대하여 분노하시고 죄를 심판하심으로
그들을 열국가운데 흩으실 것과 수취를 당할 것을 말씀하십니다(22:15,16).
하나님은 백성들이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은 죄 가운데 거할 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범죄 할수록 더욱 황폐해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은 풀무 불 가운데 있는 찌꺼기라고 했습니다.
'찌꺼끼'란 용광로에서 광석을 제련하고 나서 남은 쓰지 못할 불순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무용지물, 불순물과 같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이스라엘은 그토록 쓸모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는 듯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당위성을 입증해 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는 그들의 삶 가운데 세속적인 것들이 들어옴으로 거룩성을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은이나 놋이나 철처럼 풀무 속에 넣어서 제련함으로 찌끼를 없애야만 합니다.
본문에서 이 분순물(죄)를 제거하기 위하여 묘사한 풀무불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즉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풀무불과 같아서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합니다.(22:17-21).
이어 본문은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은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 “비를 얻지 못한 땅”으로 묘사하셨습니다.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란 문자적으로 구별되지 못한 땅, 이방인의 땅과 같은 땅을 의미합니다.
정결함이란 거룩함을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구별해 주실 때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구별된 것을 말할 때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체를 이방인과 구별 된 백성으로 삼아 주셨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으나 그렇게 살지 못함으로
결국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주신 땅을 거룩한 땅으로 구별해 주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땅과 같아서 가뭄이 들어도 비를 얻지 못하는(긍휼하심을 얻지 못하는) 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 비를 얻지 못한 땅으로 비유하신 것은
그들이 범죄로 인하여 긍휼하심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 선지자들, 제사장들, 고관들은 모두 백성의 지도자입니다.
그들의 죄를 열거한 것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부패하게 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대해서는 배역하였고, 백성들에 대해서는 식물을 움키는 사자와 같았고,
제사장들은 율법을 범하였고 성물을 더럽혔으며, 고관들은 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로 이익을 취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루살렘은 피 흘리는 성읍과 우상으로 스스로 더럽힌 성음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 가운데 지도자를 세우주시는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도하도록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하나님께서 위임해 주신
바로 그 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왕으로 세움을 받은 자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공의를 행하게 통치함으로 그들 모두로 하여금 샬롬을 누리게 하는 것이었고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은 자는
백성들의 영적인 삶을 바르게 인도할 자로서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침으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선지자는 선지자로서 그리고 지도자는 지도자로서 각각 하나님께 위임 받은 바로 그 일을 할 때
이스라엘은 샬롬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성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떠나 부패할 때에는
이스라엘 가운데는 누구도 백성들의 부패함을 막아 줄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가운데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을 샬롬으로 인도할 수도 있고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게 하는 열쇠를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을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본문은 지도자들의 부패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어떻게 부패하게 되었는지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땅 백성은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으므로(22:29)”
이처럼 지도자의 부패는 결국 이스라엘의 심판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2:30,31)”
여기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라는 말은
지도자 가운데 백성들의 부패를 막아줄 사람이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지도자들이 총체적으로 부패했음을 말해 주는 말입니다.
그들이 지도자로서 역할을 했다면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그치게 했을 것인데
그 역할을 하지 못하여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심판의 결국은 세상에서 조롱받는 것입니다(22;5,16).
우리가 패역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한다면 우리 역시 세상으로부터 멸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합당한 삶을 살았을 때에는 그들 가운데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이 존경을 받았고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보호받았으며 지켜져야 할 질서가 지켜졌지만
그들이 죄로 인하여 부패해졌을 때 그들의 부모는 업신여김을 받았고
그들 가운데 있는 고아, 과부, 나그네들은 학대를 받았으며
그들의 공동체는 불의로 인하여 파괴되어 가고 있었습니다(22:6-12).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유용한 자가 되면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자가 되지만
반대로 하나님 앞에 무익한 자가 되면 사람들에게도 무익한 자가 된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22장은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가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할수록, 영광을 돌릴수록, 부르심에 충성할수록
우리는 더욱 존귀한 자들이 될 것이며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모든 삶은 전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존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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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강 15-10-20
- 20151020 말씀큐티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2:30,31)”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말 할 수 있도록
그래서 하늘의 뜻을 알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심을 보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새벽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데
마음에 강하게 기도하게 하시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뜻은 온 열방이 구원얻도록 하시는데 있다.
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제가 그 일을 감당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로 올려드리는 그 사람
그 한 사람이 있는 교회를 축복하시고 부흥케 하신다는 뜻이었다.
주일에 함께 나누었던 말씀이었다.
그러니 그 뜻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확인하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을 세워가는 과정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 자신이 먼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가정과 교회 공동체의 무너진곳을 수축하는
막아서는 한 사람이 되고 있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신다.
예레미야 5장 1절은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사람’
결국은 나부터 한 사람 되는 것
그 한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일이구나 생각이든다.
그러면서 참 멋진 시 한편이 생각난다.
그 사람이 나였으면 합니다 / 주응규
그 누군가로 인하여
그대
진정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나였으면 합니다
그 누군가로 인하여
그대
방긋이 웃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나였으면 합니다
그 누군가로 인하여
그대
새삼 그리울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나였으면 합니다
그대
기쁘고 슬픈 날
불현듯이 생각나는
단, 한 사람이
바로
나였으면 합니다.
예수 생명 있는 나 때문에
누군가가 행복하고, 웃으며,
예수님을 그리워하게 하고
어떤 일에서든시 생각나게 하는
그 한 사람이 되어야 겠구나.
어제 지방 교역자회의에서 감리사님 말씀 중 한 마디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거우면
그것 때문에 성도들이 행복하다고.
성도들이 모든 것에 다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친구, 교제, 속회, 예배, 찬양, 기도, 그게 무엇이든
한 가지라고 의미가 부여된다면 그것때문이라도
교회에 머물러 있게 된다라고...
그 일, 그 자리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워지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