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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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영광이 떠난 것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에스겔 10;1-22
- 새생명
- 201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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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4(목) 말씀큐티
에스겔10;1-22
1 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그들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 것 같더라
2 하나님이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그룹 밑에 있는 바퀴 사이로 들어가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서 들어가더라
3 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오른쪽에 서 있고 구름은 안뜰에 가득하며
4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 문지방에 이르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5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
6 하나님이 가는 베 옷을 입은 자에게 명령하시기를 바퀴 사이 곧 그룹들 사이에서 불을 가져 가라 하셨으므로 그가 들어가 바퀴 옆에 서매
7 그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집어 가는 베 옷을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는데
8 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나더라
9 내가 보니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고 저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으며 그 바퀴 모양은 황옥 같으며
10 그 모양은 넷이 꼭 같은데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11 그룹들이 나아갈 때에는 사방으로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나아가되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그 머리 향한 곳으로 나아가며
12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곧 네 그룹의 바퀴의 둘레에 다 눈이 가득하더라
13 내가 들으니 그 바퀴들을 도는 것이라 부르며
14 그룹들에게는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째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15 그룹들이 올라가니 그들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생물이라
16 그룹들이 나아갈 때에는 바퀴도 그 곁에서 나아가고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땅에서 올라가려 할 때에도 바퀴가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며
17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올라가면 이들도 함께 올라가니 이는 생물의 영이 바퀴 가운데에 있음이더라
1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19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눈 앞의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20 그것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래에 있던 생물이라 그들이 그룹인 줄을 내가 아니라
21 각기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으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형상이 있으니
22 그 얼굴의 형상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얼굴이며 그 모양과 그 몸도 그러하며 각기 곧게 앞으로 가더라
본문이해와 묵상
10장은 장차 임할 예루살렘의 심판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1-8절은 무엇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지 심판의 도구,
9-17절은 심판의 근거,
18~22절은 심판이 어떻게 시작될 것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심판의 도구는 불입니다(2절).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6절도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취하여 가는 베옷 입은 자의 손에 주매’.
실제로 소돔과 고모라도 불로,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킬때 왕하25;8절을 보면 불로 멸망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심판하실것을 예언하실때도
‘숯불을 취하여 그리고 그 불을 성읍 위헤 흩으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베드로후서3장을 보면 참으시나 멸망시키실 때 불로 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계시록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심판의 근거는 12절입니다.
‘그룹의 바퀴의둘레에 다 눈이 가득하더라’
심판을 주관하는 천사들이 타고 있는 바퀴안에,
바퀴의 둘레에 눈이 가득하다고 말씀합니다.
온 세상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눈동자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동서남북 어디든지 자유롭게 움직이고 계십니다.
셋째, 심판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면서 동시에 시작됩니다.
겔9;3절은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 위 천사인 그룹이 있는데 그곳을 떠나 문지방으로 갔습니다.
10;3 ‘ 그룹들은 성전 우편에 섰고 구름은 안뜰에 가득하며’
성소안에 가득했던 하나님의 영광이 뜰로 나갔습니다.
10;18절도 문지방을 떠나 그룹위에 머문것은,
19절 땅에서 올라가기 위해서입니다.
성전에서 완전히 밖으로 떠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떠나셨다는 것은 더 이상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룹이 탄 바퀴 둘레에 눈이 가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칼빈의 평생 좌우명은 ‘하나님 앞에서’(Coram Doe) 였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내 삶속에, 심령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줄도 모르고
힘을 써 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없이 무엇인가 힘쓰고 있는 나는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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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앞에서(코람데오)!
나는 오늘 하루를 하나님앞에서 살고 있는가?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눈동자,
다른 사람은 아무도 나를 쏘아보지 않지만 하나님의 눈동자는 나를 지켜보고 계심을 크게 의식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만 이것은 안 보셨으면 좋겠다 여겨 하나님의 눈을 인정하기 싫고 피하고 싶은 때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이 불편하고 안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나같이 내가 건강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못하기때문이라는 생각이 문득듭니다.
참 영략없는 죄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피할 곳만 먼저 찾는 저라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바른 길을 걸어갈때 하나님의 눈이 있음이 얼마나 힘이 될까?
예수님때문에 아파하고 눈물흘릴 수 밖에 없는 그 길에서 하나님이 지켜 보고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득이 될까?
하나님의 눈은 내가 피하면 좋은 시선이 아니라
바른 삶을 살도록, 거룩한 삶을 살도록 격려하고 깨우시는 눈으로 읽는다면 그게 복이겠다 싶습니다.
삼손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줄도 모르고 오늘도 용쓰며 살고 있는것은 아닌지
먼저 살필것은 내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고 있는지 먼저 살피는 일이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저는 믿음으로 내 안에 임하신 하나님은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그리스도인의 삶도 있음을 역사속에서 많이 보고 배웠습니다.
이스라엘이 실제로 불로 심판당한 것이 분명한것이든
우리 시대에 심판도 분명히 일어날 것을 믿는데 그것만은 아님을 봅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나 회개하면 다시 영광으로 임하심을 성경에서 보았습니다.
에스겔43;1절을 보니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향한 문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 훗날에 회개했을때 다시 하나님을 사모했을때 떠나갔던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동쪽으로부터 돌아오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제 자신부터 하나님앞에 서 있느 존재임을 놓치지 않고
교회와 성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그 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분과의 약속이 지체됨에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자꾸 다른 방법을 기웃거리고 있다면
그 분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점검하십시오.
- 하땅이 이야기, 박성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