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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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좋은 것이 아닌 하나님 뜻을 택하십시오 - 에스겔 17:1-10

  • 새생명
  • 2015-10-08
  • 951 회
  • 3 건
에스겔 17장 1절-10절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수수께끼와 비유를 말하라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색깔이 화려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꺾되 

4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인의 성읍에 두고 

5 또 그 땅의 종자를 꺽어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더니 

6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 아래에 있었더라 

7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어진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뻗고 가지가 퍼졌도다 

8 그 포도나무를 큰 물 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라 

9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어찌 그 뿌리를 빼고 열매를 따며 그 나무가 시들게 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연한 잎사귀가 마르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 

10 볼지어다 그것이 심어졌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에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오늘 본문은 우화적 이야기를 통하여 에스겔에게 여호와의 마음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이를 위하여 수수께끼와 비유의 이중적 구조를 가지는데 그것은 두 마리 독수리, 두 가지의 나무, 두 가지의 징계 형태, 절망과 소망의 메시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색깔이 화려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는 바벨론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날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다스리는 통치 영역을, ''은 잘 훈련된 막강한 군사력을, 숱한 ''은 그의 휘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다양한 '색깔'은 바벨론의 다양성 즉, 언어, 관습, 의복 등이 다른 복합 민족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레바논은 팔레스타인의 북부 지역에 위치한 거대한 산맥이지만 남쪽으로 그 경계가 이스라엘에 접해 있어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영토의 일부로도 성경에는 표시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레바논은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상징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결코 실패를 하길 원하시거나, 불행해 지기를 원치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잘 먹고 잘 살며, 장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 아닌 것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낭떠러지를 향하여 가는데 말리지 않을 부모가 없듯이, 그분의 예정하신 축복된 길로 가지 않으면 하나님은 속이 타 수 차례 말씀했을 것입니다.

<오늘의기도> 지금은 전부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자녀 된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함을 믿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정함이 없을지라도, 그 속에서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붙잡는 그 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 돋는해아침빛 15-10-09
      20151008(목) 큐티말씀과 일기

      에스겔 17;1-10절

      사무엘상 20장 새벽에 받았던 말씀을 홈페이지를 통해 옮겨본다.
      이 말씀이 어제와 오늘 내내 묵상이 된다.
      이제 다윗은 그동안 좋은 우정을 보여주었던 요나단과도 헤어져야 한다.
      다윗에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되 특별하게 함께 하셨다.
      삼상13~18장까지를 살펴보면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셨다.
      삼상13;14절을 보면 왕의 직분이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옮기셨다.
      삼상15;28에는 이스라엘 나라를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옮기셨다.
      삼상16;14절에는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옮겨졌다.
      삼상18;12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삼상18;28절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가장 비참하고 절망적인 자리에 다윗이 서 있는 줄 알았는데
      다윗이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면서 많은 것을 진행하셨다.
      왕의 직분, 나라, 하나님의 신을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옮기셨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다윗과 함께 하셨다.

      다윗에게 사울은 분명히 고통과 슬픔 절망이라는 환경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환경속에서 다윗을 빚어가셨다.
      만일 다윗이 그 사울이라는 환경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하나님께서는 다른 환경을 통해서 만들어 가셨을 것이다.
      사울을 피하면 또 다른 제 2의 사울을 주셨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절망처럼 보이는 인생속에서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다는 것을 발견한다.
      오늘 내 삶의 자리가 어떠하든지
      낙심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발견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야곱이 떠올려진다.
      누구보다 사기 기질이 많고 교활하고 속이는 자의 삶을 살았던 야곱.
      그런 그가 가족품을 떠나 삼촌 라반에게서 오히려 자신이 속임 당함을 경험한다.
      어쩌면 속이는 자가 누군가에게 속임을 당하려면
      자기보다 더 교활한자여야 되니 라반을 야곱에게 붙이신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속이는 자로 살았을때에는 그것이 당연한 것인 것 같았는데
      속임을 당해보니 속임당한 사람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그때서 아버지와 형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하나님께서 야곱을 역시 빚어가셨다.
      야곱에게 라반은 꼭 있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우리의 삶속에서 종종 사울, 라반과 같은 사람
      혹은 그런 환경가운데 처할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환경속에서 다윗과 야곱을 빚어가듯이
      나를 빚어가시는 하나님을 기대해야 한다.
      피하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나를 더 이상 견디게 하지 못하고
      존재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며
      버틸 힘마저 없다 느낄 때
      그 사람, 그 장소, 그 상황은
      그만큼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 가시고자 하시는 계획이다.
      야곱을 보면서, 다윗을 보면서
      나는 이 하나님을 신뢰한다.
      아니 신뢰할 수 밖에 없게 하신다.

      오늘 에스겔 17장의 말씀이 같은 연장선에서 묵상이 된다.
      7절, 날개가 크고 숱 많은 깃털을 가진 다른 거대한 독수리가 나타났다.
      독수리가 자기에게 물을 줄까 해서 이 포도나무는 독수리를 향해 심긴 곳에서
      부리를 뻗고 가지를 뻗었다.
      이 독수리는 애굽이다. 포도나무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이다.
      바벨론의 위기 앞에서 손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애굽을 의지하여 위기를 벗어나려는 철저히 인간적인 수단이다.

      죄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회개 없이 단순히 사람의 계획과 생각을 가지고
      인간적 구원을 추구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참한 모습이다.
      놀라운 것은 이 지경이 되고도 회개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꼭 나의 모습 같다.
      위기에 처해 있을 때라면 다른 어떤 때보다도 하나님이 가장 필요할 때인데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꼭 나의 모습이다.
      고통의때, 역경의 때에야 말고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시드기야가 다른 이가 아니라 꼭 나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이들을 만나고 경험한다.
      고통받고 아파하는 이들을 보면 폐부를 찌르는 고통을 경험한다.
      이유를 다 몰라서도 그렇지만
      말하든 하지 않든 그 내용을 속속들이 알 땐 더 그렇다.

      그럴때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다.
      아니 할 수도 없다.
      그 아픔이 뭔지 알기 때문이기도 그렇고
      그 말들이 결코 그 사람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배가 항해를 하다가 큰 풍랑을 만나면
      많은 선장들은 후퇴하거나 좌우로 피해 살기를 모색한다고 한다.
      그래서 살아남은 이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가장 그나마 안전한 길은
      모든 갑판과 수문을 잠그고 다가오는 파도를 향해
      정면으로 나가는 것이라 한다.
      그게 문제와 배 사이의 간격을 가장 좁히는 방법이기에
      파손도 버거움도 있으나 그게 빠르고 분명한 방법이라 한다.

      누구에게나
      나를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문제를 만날때마다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가는지
      보고 또 그렇게 살아간다.

      오늘 가족앞에서 말해야 겠다.
      위기는 위험하기는 하지만 기회가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기도하면서 보여주어야 겠다.
    • 그사랑 15-10-09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 백성, 내 자녀가 죄악가운데 있을때
      다시 회복의 삶을 살라고 심판가운데 놓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심판중에도 결코 사랑의 눈길을 피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나의 실수와 죄악은 무엇일까?
      내 눈에 좋은 것?
      바벨론도 애굽도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 마음에 드는 것
      내 생각, 내 계획?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는 무엇인가?
      바벨론에 망하는 것이 살 길이다.
      애굽 독수리를 의지하는 것은 아닌데
      바벨론 독수리가운데 거하라는 것은 뜻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처방앞에서
      순종한다는 것이 어렵기만 하지만
      여호와이레 순종함으로 예비하심을 경험했던 아브라함처럼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해야겠다.
    • lydia 15-10-09
      본문 해설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