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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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0(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 히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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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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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고 의롭게 된 성도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의 순례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길은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 큰 대제사장 예수님을 소개합니다(14~5:10). 그리스도는 이미 승리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사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에 나아가심으로써 대제사장의 사역을 성취하셨고 그 효력은 사람들에게 지금 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위대한’ 대제사장이십니다. 모든 이전의 대제사장을 능가하십니다. 사역의 범위, 효과, 대가 모두에서 뛰어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인간’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의 시련을 아십니다. 예수님은 ‘독특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대제사장되시는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가 계시는 하늘의 지성소로 단번에 나아가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인자한 제사장입니다.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시험을 받고 있었던 것처럼 그분도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14절이 이 적대적인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15절은 우리가 외롭다고 느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켜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여기신다는 것을 확신할 때, 우리는 용기를 얻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히브리서에서 신약의 가장 중요한 초청을 마주 대하게 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16).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들도 1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부들부들 떨고 들어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이 심판의 보좌가 아니라 은혜의 보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이 아버지 앞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누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은혜의 보좌는 지성소에 있는 시은소를 말합니다. 짐승의 피가 아닌 그리스도의 피가 이미 뿌려졌습니다.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뿌림을 통하여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야 합니까? 16절입니다. 긍휼하심을 얻고,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받기 위해서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긍휼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벌을 받을 것이라는 불안함으로가 아니라 담대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호의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담대함과 함께 전능하신 아버지의 도우심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죄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을 진지한 믿음의 기도에 바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태도야말로 교만의 극치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만 그분 없이도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의 자리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중대하고 시기 적절한 자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안식을 맛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맛볼 수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안식을 맛볼 수 없다면 그는 결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보장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갈 때 언제나 긍휼과 은혜를 발견한다. 그래서 더 간절함과 감사가 있습니다. 보좌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기도하는 죄를 쉬지 않기를 다시 한번 결심해야 합니다. 매일의 루틴이 되고 주중의 리추얼이 되어 일생에 가정과 가문의 문화가 되어 유산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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