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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8(금) D6묵상, 전혀 그렇지 않아! 마태복음 5:43-48
- 최고관리자
- 202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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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원수 같은 사람이나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라고 명하셨습니까?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43-44절)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44절에 나오는데 43절에서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들었다고 하셨는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씀은 구약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구약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고 듣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원수를 미워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주위에 원수 같은 사람이 있을 겁니다. 원수라고 말할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혹은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박해랄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를 힘들게 하거나 우리의 신앙을 조롱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과연 나는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원수 같은 사람, 나를 박해하는 사람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할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명령은 무척이나 어려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45절). “이같이 한즉”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원수를 사랑하며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해야, 즉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구원받는다는 것을 뜻하는데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지 행함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이 믿음이라고 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의 뜻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믿음 외에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다만, 우리가 가진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면,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적어도 그렇게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참된 믿음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참 믿음은 그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정도가 아닙니다.
참 믿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45절 하반절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줍니다. “…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45절)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시듯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서 사랑하는 사람이나 원수 같은 사람이나,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나 핍박하는 사람이나 동일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말씀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그러니, “나는 안 돼. 나는 할 수 없어. 어떻게 원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원수 같은 사람, 나를 핍박하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몸부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그런 중에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46-47절)
예수님이 이 두 구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너희는 이방인들보다는 좀 나아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의 핵심입니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습니까? 세리도 그 정도는 합니다.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다른 사람보다 나은 점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방인도 그 정도는 합니다. 나와 사이가 좋은 사람, 내게 잘해 주는 사람만 선대하고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라면 그 정도 수준은 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원수나 원수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몸부림이라도 쳐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이며,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순종하기 불가능할 것 같은 이 계명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48절). 주님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온전하심이란 “원수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 말해주듯이 삶의 온전함, 인격의 온전함, 관계의 온전함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구원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에서는 그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순간이 끝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의 믿음만 보시고 구원하시지만, 구원하신 이후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우리도 온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에 담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아 당신의 자녀가 된 우리가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닮기를 원하십니다. 그럼으로써 온 세상이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넘쳐나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라면, 우리는 ‘하나님처럼 온전해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처럼 온전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처럼 온전해지기’를 인생의 목표로 삼고 성령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이 되어 있을 겁니다.
우리의 삶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대충대충 살지 않아야 합니다. “이 정도면 됐지 뭐”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처럼 온전해지는 것을 목표로 해서 최선을 다하되,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말씀과 기도 가운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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