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0240729(월), 모든 일은 그분의 일입니다, 고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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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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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3:1)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인간 지도자들을 과도하게 높인다는 데에 있습니다. 인간 지도자들을 높이는 것은 그 이름을 들어서 자기를 높이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런 모습이 전형적인 육신에 속한 자(1)의 모습이라고 지적합니다. 앞서 말한 "육에 속한 사람(2:14)은 성령님을 알지 못하는 자연인 상태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와 달리 "육신에 속한 자"는 최소한 성령님을 알고 있고,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옛 사람의 욕심입니다. 그들은 자기중심적인 시기와 분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것을 온전히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중심의 사람으로 거듭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신령한 자" 곧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계속 작용하고 있는 육신, 곧 옛 사람의 소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힘쓰고 있습니까?

2.

 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6,7) 

바울은 일부 고린도 교인들이 그의 이름을 환호하고 높이는 것을 결코 반기지 않습니다. 실상은 자기를 높이려는 잘못된 욕구에서 나온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밭인 교회에서 바울의 역할은 씨를 심는 일입니다. 아볼로는 아볼로대로 물을 주는 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협력의 관계입니다. 이는 수평적인 차원입니다. 여기에는 직능(職能)의 차이는 있지만 질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수직적 차원에서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자라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불어 넣으시는 생명의 숨결이 아름답게 빛나는 하나님의 정원을 인간의 욕심이 지배하는 탐욕의 장으로 바꾸어 놓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나에게 맡겨진 일을 기쁘게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이 일이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습니까? 

고린도 교회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실수나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밭도 우리의 것이 아니고 씨앗도 우리의 것이 아니며 수확물도 분명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일에 동참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역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으며 사역도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누군가는 씨로, 누군가는 밭으로, 누군가는 물 주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받는 동역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