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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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2(금) D6묵상, 희망과 용기, 사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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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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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주님께서(야웨)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주님께서(야웨)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2 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 속을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 3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다. 너의 구원자다. 내가 이집트를 속량물로 내주어 너를 구속하겠고, 너를 구속하려고, 너 대신 에디오피아와 스바를 내주겠다."(사43:1-3, 새번역)
이사야 43장은 이스라엘을 지으시고 선민 삼으신 하나님은 그들이 비록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실패하여 포로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귀환할 선민 이스라엘은 물과 불로 상징되는 모든 위험 요소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여 주실 것과 이 일을 위하여 대신할 속량물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주실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은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성취하실 것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창세기 1장 2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님은 말씀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만들었습니다. '창조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바라‘는 "새롭게 하다"를 의미하며, 무에서 유로 창조하신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활동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 1절에 사용된 단어와도 동일한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만이 이 일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뜻합니다.
두 번째 단어인 '짓다'로 번역된 '야짜르'는 "아주 정교하고 세밀하게 게 모양을 만들다"는 의미가 있으며, 창세기 2장 7절에서 인간의 몸을 만드시는 장면에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이러한 동사가 사용된 것은, 주 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신 것은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신 것만큼이나 세밀하고 중요한 행동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되었다는 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으로 정교하고 세밀하게 변화시키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는 말씀은, '이름을 불렀다'는 의미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의 친밀한 관계를 암시합니다.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짓는 것에는 나의 소유임을 의미하고 책임짓겠다는 것과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이름을 "야웨"(주님)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야웨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언약을 이루시는 하분입니다. 반면에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속량물로 삼으신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언약, 사랑의 주님으로, 속량할 대상을 향해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하십니다.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매우 소중한 존재이며 사랑받고 있음을 너무나도 자주 잊어버립니다. 우리의 소중한 정체성을 자각시키는 이 말씀을 매일, 매순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말씀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내가 얼마나 안정감을 느끼고 평안을 누리는지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특별히 43장 3절, “내가 이집트를 속량물로 내주어 너를 구속하겠고, 너를 구속하려고, 너 대신 에디오피아와 스바를 내주겠다.”는 말씀을 마음애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속량물'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이 현재 바벨론에 포로가 된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들이기 위해 애굽과 구스 백성을 파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마가복음 10:45에서 ’대속물‘로 인용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예수님은 그분의 목숨이 스스로를 변화시킬 능력이 전혀 없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독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여전히 심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복과 구원을 약속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를 용서하고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것이라는 것은 책임진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물 가운데 지날 때에도 물이 침범하지 못할 것이고 불 가운데 지날 때에도 불꽃이 사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고난을 만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있게 되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두려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GOD) 이심을 드러내시며, 언약하신 자신의 사랑이 결코 변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동서남북 어느곳에 흩어져 있든지 그들을 찾아내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돌아오게 될것인데, 그들을 하나님이 지었고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주권적인 구원의 행위를 통해 드러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고 자신을 계시함으로써 사람들이 하나님을 깨닫고 알게 만드십니다. 이는 특권중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은 흩어졌어도 다시 모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징계를 당해도 다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관계의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때때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환경과 상황이 막히고 하나님께 질문하게 됩니다. 나의 신앙생활이 바르게 가고 있는 것이 맞는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그때마다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정답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성취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통과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실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회복시키심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십니다.
언약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환경속에서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내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회복을 주관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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