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0260119(월) 과부와 고아가 안전한 곳, 그것이 교회다, 출 22:22-24
- 최고관리자
- 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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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출애굽기 22장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언약 율법 가운데,
공동체의 삶과 관계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다루는 부분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이 어떤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입니다.
특별히 출애굽기 22:22–24는 공동체 안에서 가장 약한 존재들을 향한
고대 근동 사회에서 과부와 고아는 경제적 보호자도, 법적 대변인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들은 구조적으로 착취당하기 쉬웠고, 억울함을 호소할 통로조차 거의 없었습니다.
“너희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고 직접 명령하십니다.
언약 백성에게 주어진 분명한 책임으로 주시는 말씀입니다.
22절에서 하나님은 과부와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해롭게 하다’는 단순히 폭력을 가하는 행위만이 아니라,
무관심, 방치, 이용, 침묵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돌보지 않는 것도 해로움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23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이 부르짖을 경우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약자의 편에 서 계시며, 그들의 억울함을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24절은 매우 강한 경고입니다. 과부와 고아를 억압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직접 개입하시며,
그 결과는 공동체 전체에 심각한 상처로 돌아오게 된다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곧 하나님 자신을 대하는 태도로 여기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마치 사울이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께서 하셨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여기에서도 주님은 핍박당하는 그리스도인들과 예수님 자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건강함이 얼마나 강한 사람을 보호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약한 사람을 안전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화합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화합은 어수선함 속에서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을 말합니다.
교회와 가정,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서로의 연약함, 상처, 미성숙함 때문에 관계는 더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고 느낄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무관씸한 은둔자로 부르지 않으시고,
출애굽기 22:22–24는 화합의 기준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화합은 힘 있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약한 사람이 보호받는 구조에서 시작됩니다.
공동체 안에서 소외된 사람, 말수가 적은 사람, 상처로 인해 까칠해진 사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을 때 화합은 가능해집니다.
하나님께서 과부와 고아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고 하신 말씀은,
반대로 우리가 품은 사람의 눈물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우리가 화합하여 산다는 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약한 사람 곁에 남아 주는 선택을 하는 것, 불편함을 감수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판단보다 보호를, 거리두기보다 책임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대상을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과부와 고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때, 우리 가정은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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