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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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9(목) 주는 손보다 먼저 보시는 것, 고린도후서 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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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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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9:6-8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3)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89장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에 관한 바울의 권면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기근과 박해로 인해 극심한 어려움 가운데 있었고, 바울은 이방 교회들이 이 연보 사역에 참여함으로 복음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성을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이 연보는 단순한 재정 지원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응답이며 복음의 열매를 삶으로 증언하는 행위였습니다.

 

바울은 헌금을 의무나 강요의 문제로 다루지 않고, 은혜와 마음의 태도의 문제로 다룹니다. 그래서 그는 금액이나 외적인 행위보다,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는 내면의 태도와 동기를 강조합니다. 고린도후서 9:68은 이 연보 권면의 핵심으로, ‘주는 행위’ 자체보다 ‘주는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6절에서 바울은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흔히 양의 공식처럼 오해되지만, 바울이 말하려는 핵심은 단순한 계산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 곧 은혜에 반응하는 삶의 방향을 설명하는 비유입니다.

농사에서 수확은 씨앗의 양과 질에 비례합니다. 아무것도 심지 않으면 거둘 것도 없고, 소량만 심으면 소량만 거둡니다. 바울은 이 자명한 현실을 통해, 하나님의 일에도 ‘심음’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점은 기술이나 효율이 아니라, 의도적인 참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짜이지만, 그 은혜에 참여하는 삶에는 의식적인 선택과 헌신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 구절은 “많이 주면 더 많이 받는다”는 보상 논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손에 쥔 것을 내려놓는 행위를 말합니다. 거둔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신뢰에 응답하시는 방식입니다. 이 응답은 반드시 물질로만 나타나지 않으며, 기쁨, 감사, 관계의 회복, 선한 영향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같은 액수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많이 심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많이 심는다’는 것은 여유에서 남는 것을 내놓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향으로 삶을 기울이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곧이어 7절에서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겨 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 구절의 해석 열쇠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적게 심는다’는 것은 단지 액수가 적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계산된 헌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공급자로 신뢰하지 못하면, 사람은 최소한만 심고 최대한을 지키려 합니다. 이때 결과가 ‘적은 거둠’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하나님이 벌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관계가 좁아졌기 때문입니다. 신뢰가 좁아지면, 경험하는 은혜의 폭도 좁아지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헌금의 기술을 가르치는 말씀이 아니라, 믿음의 깊이를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심느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는가’입니다.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심는 사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으로 반드시 거두게 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거둠은 풍요의 약속이기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씀은 더 많이 주라는 압박이 아니라, 더 깊이 신뢰하라는 초대의 말씀입니다.

 

7절에서 바울은 이 말씀의 핵심을 분명히 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에 정한 대로’이며, ‘억지’와 ‘인색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계산된 헌신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기쁜 헌신입니다. ‘즐겨 내는 자’란 손해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를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8절은 이 모든 태도의 근거를 하나님께 둡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라는 선언은, 관대함이 인간의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풍성히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한 상태로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농사에 있어서 농부의 기분이나 태도는 수확의 결과를 바꾸지 않습니다. 씨앗과 땅과 날씨가 결과를 좌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과보다 관계를 보시는 분이시며, 행위보다 마음을 먼저 보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드림에 있어서 얼마나 관대한가는 나와 하나님 사이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주었는지는 사람 앞에서는 평가될 수 있지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주었는지는 하나님 앞에서만 드러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헌신이 얼마나 컸는지를 묻기보다, 그 헌신이 기쁨에서 나왔는지를 물으십니다. 

즐거이 드리는 자도 부담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의 삶을 이미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계산보다 신뢰로, 두려움보다 감사로 반응합니다. 

나는 주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손에 쥔 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관대함은 소유의 문제 이전에 믿음의 문제이며, 즐거움의 문제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나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주고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나를 지키기 위해 계산하며 주고 있는지 생각하십시오. 이 질문 앞에 정직해지는 것이 참된 관대함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