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0260130(금) 모든 것을 가질 때도, 아무것도 없을 때도, 빌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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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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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2)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기록한 서신입니다.
바울은 자유를 잃은 상태였지만, 이 편지 전체에는 기쁨과 감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4장 11–19절은 빌립보 교회가 보내온 물질적 후원에 대한 감사로 시작되지만,
단순한 후원 보고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참된 만족과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바울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설명하며 풍족함과 궁핍함이라는
“무엇을 의지하는가”가 신앙의 핵심임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11절)고 말합니다.
이 만족은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훈련과 순종을 통해 형성된 신앙의 태도입니다.
바울은 훈련과 순종을 통해 가난할 때도, 풍족할 때도 동일하게 만족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의 만족은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기준이 바뀐 결과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13절)는 말씀은
무엇이든지 다 성공할 수 있다는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와 의존의 고백입니다.
이 말씀의 초점은 ‘내가 할 수 있다’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바울은 환경을 통제할 수 없었지만, 그리스도께 의지함으로
빌립보 교회의 후원은 단순한 도움을 넘어 하나님께 드려진 향기로운 제사입니다(14-18절).
바울은 그들의 나눔을 통해 그들의 믿음이 자라고 있음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공급은 언제나 공동체 안에서, 나눔과 순종을 통해 흐릅니다.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19절)는 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필요를 채우실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즉,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공간의 부족이 아니라 욕망의 과잉입니다.
사실 옷장이 작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욕망은 채워질수록 작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공간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큰 옷장이 아니라, 더 작은 욕망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만족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의지의 방향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적 여유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욕망을 창고처럼 쌓아둘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그 필요는 종종 우리가 생각하는 목록과 다릅니다.
나는 소유로 안심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으로 평안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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