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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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9(월) 예수님을 만날 때 일어나는 삶의 회복, 눅 8;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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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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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8:26–35

26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27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28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니

29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30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31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32   마침 그 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34   치던 자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알리니

35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를 건너 거라사 지방에 도착하신 직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지역은 유대 땅의 중심이 아니라 이방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곳입니다. 

사람들은 돼지를 기르고 있었고, 공동체는 한 사람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그를 무덤 사이로 밀어내며 격리해 두었습니다. 

이 남자는 악령에 사로잡혀 있었고, 쇠사슬로 묶여야 할 만큼 위험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사회는 그를 치유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그의 회복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말씀으로 악령을 내쫓으셨습니다. 

귀신들은 자신들을 “무저갱에 들어가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하며 

근처의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고,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셨습니다. 

그 결과 돼지 떼가 호수로 달려 들어가 몰살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크게 놀라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소리를 지르거나 미친 듯이 행동하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옷을 입고 예수님 발치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보았습니다(35절). 

그 광경은 충격적이었고,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26절)은 단순한 정신적 이상이 아니라, 

영적인 억압 속에 있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세는 인간의 어떤 문제보다 강력합니다. 

또한 자기 통제력을 상실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의 모습은 오늘날의 중독, 정신적 붕괴, 정체성의 상실과도 닮아 있습니다. 

“무덤 사이에 거하던 자”란 구절에서 무덤은 죽음과 단절의 상징입니다. 

그는 살아 있었지만, 이미 사회적으로는 죽은 사람처럼 취급받고 있었습니다.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35절). 

이 구절은 회복이 완전히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옷을 입었다는 것은 수치가 가려졌다는 것이고, 

정신이 온전하다는 것은 생각과 판단이 회복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의 발치에 앉았다는 것은 배움과 순종의 자리에 들어왔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3435절) 

사람들은 놀라워하기보다 두려워했습니다. 

치유보다 더 큰 변화는, 자신들이 익숙하게 유지하던 질서가 흔들리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문제를 잠잠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눈먼 자만 고치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생각이 무너진 사람, 마음이 찢긴 사람, 정체성을 잃은 사람을 고치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치유는 증상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회복에 있습니다. 

어떤 인생도 너무 복잡하지 않으며, 어떤 상처도 그분의 손이 닿지 못할 만큼 깊지 않습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나는 사람을 세상의 눈으로 보고 있는지,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있는지 묻습니다.

거라사 사람들은 변한 사람보다 돼지 떼의 손실을 먼저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한 사람의 회복된 삶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으면 생각이 바르게 정렬됩니다.

그분 곁에 있으면, 내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과 정말 중요한 것이 구분되기 시작합니다.

시편 34편 8절의 말씀처럼, 주를 맛보고 알 때 우리는 진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은 설명을 많이 하지 않아도 증인이 됩니다.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변화 자체가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