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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묵상: 12.19(금) 도마_상처를 만지는 믿음, 요20: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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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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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24–31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본문 해설
상처를 만지는 믿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부활의 소식이 가장 뜨겁게 퍼지던 그 밤,
기쁨과 환호가 방을 가득 채우던 그 순간에
도마는 공동체 한가운데 있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믿지 못했다.
아니, 믿지 않은 척하지 않았다.
그는 흥분된 말들에 자신을 억지로 맞추지 않았고,
다른 제자들의 확신을 빌려 자신의 믿음을 꾸미지 않았다.
도마는 솔직했다.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
이 말은 불신앙의 선언이 아니다.
진실을 가볍게 다루지 않겠다는 고백이다.
도마는 상처 입은 마음으로,
확신 없는 믿음을 살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이다.
그리고 여드레 후,
예수님은 닫힌 문을 지나 다시 그들 가운데 서신다.
이번에는 도마를 향해 말씀하신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은 도마를 꾸짖지 않으셨다.
그의 질문을 무례하다고 여기지 않으셨다.
도마의 조건을 낮추라고 요구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도마가 요구했던 바로 그 지점으로 오셨다.
못자국, 찢긴 옆구리, 고통의 흔적.
예수님은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셨지만
상처를 지운 채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 순간, 도마의 질문은 사라지고
고백만 남는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이 고백은 단순한 믿음의 회복이 아니다.
요한복음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깊고, 가장 신학적인 고백이다.
‘주님’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의심을 통과한 믿음은 다르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감정이 식어도 남아 있다.
상황이 어두워져도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믿음은
말이 아니라 만남에서 왔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 말씀은 도마를 향한 책망이 아니다.
도마를 통해 우리에게 열린 초대이다.
의심이 있다고 믿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직한 의심은
믿음으로 가는 문 앞에 서 있다는 증거다.
오늘 우리의 믿음은 어떤가.
사람들의 말에 기대고 있지는 않은가.
공동체의 분위기에 올라타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도마처럼
확신 없이 고백하지 않겠다고 멈춰 서 있는가.
예수님은 오늘도
의심을 부끄러워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의심을 숨기라고 하지 않으신다.
그 의심을 들고
자신에게 오라고 하신다.
상처를 만질 만큼 가까이.
질문을 던질 만큼 정직하게.
그리고 결국,
믿음의 고백으로 나아오라고 초대하신다.
의심을 통과한 믿음은
약한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깊은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 위에,
오늘도 우리의 24시간이 다시 세워진다.
의심은 믿음의 반대가 아니라, 믿음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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