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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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묵상: 12월 21일(주일) 사가랴, 침묵속에 시작된 만남, 눅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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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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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16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본문 해설

 

침묵 속에서 시작된 만남

 

대림절은 자칫 연말이 껴 있어 흐트러지기 쉬운 절기이다.

그러나 환호보다 침묵이 먼저이고, 조용히 기다림으로 맞이하는 절기이다.

그 의미대로 하나님은 늘 조용히 은밀하게 일을 시작하셨다. 

 

조용하고 은밀함으로 따지먼 사가랴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의롭고, 말씀을 지키며, 흠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제사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는 드러내 놓지 못하는 오래된 아픔, 

그래서 침묵할 수 밖에 었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 가정에는 자녀가 없었다.

당연히 오랫동안 기도했을테지만 아직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의 아픔이 아련히 그의 마음에 쌓여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사가랴는 늙었다.

기도는 했지만 이제 기대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을것 같다. 

어쩌면 자식을 위한 기도는 내려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런때에 사가랴는 전례대로 제비뽑혀 봉사를 위해 성전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 그만 두겠다고 못하겠다고 할 법하지만

그는 여전히 사명을 내려놓지 않았고, 헌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응답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은 사람, 사가랴!

하나님은 그 스가랴의 “기도”를 알고 계셨고 기억하셨다.

 

그날도 사가랴는 평소처럼 묵묵히 제단 앞에 섰지 싶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을 것이고

차례가 오면 으례 감당해야 되는 예배의 한 순간,

그러나 그 자리, 그 순간이 하나님의 때와 마주했다. 

그건 아마도 그 마음에 누구도 갖지 못한

조상대대로 오랜 시간부터 오시리라로 들어욌고 믿고 있었던

메시아를 향한 갈망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사람이라면 말라기 선지가 오리한 엘리야를 이 사람에게서 나오게 하느느게 맞겠구나.

“사가랴야, 네 기도를 들었다.”

 

그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가랴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 말씀은 그냥 위로가 아니었을 터.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기도, 하나님께도 잊혔다고 생각했던 그 기도,

이제는 더이상 입 밖으로도 꺼내지 않던 내 기도를 하나님은 정확히 기억하고 계셨구나.

그리곤 한 없는 감동과 눈물을 흘렸을 것 같다.

 

스가랴의 기도와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 하나님은 새로운 기도를 기대하거나 그것만을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구나.

오래전에 그만둔, 포기 기도를 여전히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신 분이셨다.

기도가 멈춘 자리, 소망이 멈춘 자리에서 하나님 말씀이 임했다. 

'사가랴야, 내가 네 기도를 들었단다.'

 

얼마나 놀랐고 두려웠을까?  그리고 하나님께 질문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나는 늙었고,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못 미더운 질문을 했을까만은 

하나님은 사가랴의 입을 잠그셨다.

말씀이 이루어져 자식을 출산할때까지 침묵하게 하셨다.

 

벌일까? 훈련일까?

곰곰히 생각한바 침묵은 벌이 아니라 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지 못하는 침묵의 시간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말이 멈춘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그 말씀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새겨지기 시작했지 않았을까.

기다림과 말씀을 입술에 채우는 훈련.

 

사가랴는 말을 하지 못한 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기다림의 시간동안 그의 아들 세례요한의 출생 시간이 무르 익고 있었다.

그 날은 말이 멈춘 자리에서 다시 트이는 시간이 될 거다.

 

대림절에 사가랴를 묵상한다는 것은 은혜의 영성을 깊이 하는 시간이다.

설명하지 못해도,

증명하지 못해도,

말씀 앞에 머무는 시간.

침묵 속에서 태어나는 기쁜소식.

 

그의 개인적 기도는 자신에게서 시작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의 기쁨으로 확장되어 졌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눅1:14)

 

하나님은 한 사람의 오래된 눈물을 통해 한 시대의 길을 여신다.

사가랴의 아들은 메시아가 아니었다. 

그러나 메시아를 준비하는 사람, 세례요한이었다.

 

대림절에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무대의 중심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길을 내는 사람들. 침과 순종속에서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늘, 우리가 사가랴처럼 서야 할 자리가 있다.

기도하는 자리.

침묵하며 기다리는 자리.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증인의 자리.

 

오늘 우리 새생명교회 공동체는 응답 없는 기도 앞에서 어디에 서 있을까? 

 

하나님은 여전히 성전의 한쪽에서 오늘도 마땅한 예배, 평범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

자신의 기도앞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을 부르시는 줄 확신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소망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의 기도를 내가 들었다.”

 

한 사람의 기도와 응답때문에 공동체 식구들도 함께 기뻐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니 대림절에 사갸라는 읽고 쓰며 묵상하는 시간

문제가 해결된 계절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다시 믿는 시간이다. 

오늘도 내가 할 일은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기보다,  자리를 지키며 기다리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침묵 속에서 시작된 이 만남이 온 백성을 위한 구원의 문이 되었음을

사가랴의 이야기가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응답은 지연되는 듯 보이나, 

하나님의 때에는 가장 정확하다(전 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