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0220704(월), D6묵상, 창25;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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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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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으라

2. 질문하라

Q.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의 자연적인 기질때문에

갈등한 적이 있었는가?

Q. 그것은 당신에게 죄의 본성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오늘 묵상 본문은 아브라함 한 세대를 지나고

그 다음세대인 이삭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19).

이삭은 아들을 얻지 못하자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의 응답으로 리브가는 쌍둥이를 잉태합니다(21).

여기서도 약속의 수혜자를 공급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리브가는 쌍둥이를 잉태하고 뱃속의 아이가 서로

싸움으로 고통을 당하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22).

하나님은 리브가의 기도에 대해서 예언을 주셨는데,

이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것이었습니다(23).

결국 이 예언을 둘러싸고 이삭은 에서에게,

리브가는 야곱에게 이 예언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속이고 발버둥치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과정이

이후의 모든 이야기들을 형성하게 됩니다.

 

두 아들이 태어나자 첫째는 붉어서 에서라고,

둘째는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야곱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25~26).

 

이야기는 시간을 뛰어넘어 그들의 장성한 시절을 묘사합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으로 들사람이 되었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으로 장막에 주로 머물렀습니다(27).

여기에는 분명하게 전달하려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에서가 이 땅에서의 삶을 누리기 위해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에서는 세속적인 성격이 점점 드러나는 가운데

사냥이 주는 위험과 쾌락, 자유라는 이야기에는

세속적 본능이란 주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에서를 편애한 것은 그 사냥한 고기가

자기 입에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세속적인 감각과 자기 만족을 보여줍니다.

그런 감각의 절정은 에서의 삶에서 드러났습니다.

 

야곱이 죽을 쑤었다(끓이다)(29) 할 때 이 동사는

다른 곳에서는 주제넘는 행동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이 동사는 야곱이 자기의 먹잇감을 노리고

주제넘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에서는 사냥에서 돌아와 너무 배가 고파서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고 말합니다.

먹게 하라는 말은 한 입에 확 들이키게 하라는

뉘앙스를 전하는데 에서의 기질에 맞는 말입니다.

붉은 것이라는 말이 여기서 반복적으로 쓰이는 것도

에서의 충동적 성향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야곱은 죽 한 그릇을 장자권과 바꿀 것을 요구했고

맹세까지 하게 함으로써 장자의 명분을 팥죽으로 샀습니다.

에서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다고 함으로써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다는

성경의 판단을 증명합니(34).

 

에서는 현재를 위해 살아가며 그로 인해 치를

대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갖지 않는

세속적인 사람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넘긴다는 맹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27장에서는 마치 그런 맹세를

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아버지의 장자축복을 구합니다.

에서가 장자권을 경시했다는 선언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경멸한 것입니다.

육체적인 욕구를 위해서 영적인 공급을 희생하는 것,

일시적인 쾌락을 위해 영원한 것들을

포기하는 것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선 순위와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뒤죽박죽이 된 우선 순위의 삶을 사는 것은 비극입니다.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사는 삶은 필연적으로

가치 있는 것을 무시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반면 야곱은 비록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충동적인 형을 대상으로 한 계산된 행동을 행했습니다.

비록 본문이 야곱의 잘잘못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에서의 잘못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만,

영적인 것을 얻기 위해서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비열한 수단으로 그것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문은 가르쳐줍니다.

 

우리도 타고난 기질과 성격이 있습니다.

누가 옆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고쳐지지

않는 성향, 기질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성격과 기질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설 때가 있고

교회 공동체의 질서를 파괴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의 기도는 명확합니다.

 

주여, 내 성격과 기질이 주의 뜻을 위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통로로 사용하시고,

어떤 경우에도 주의 영광 가리지 않도록

다스려 주소서.’

 

3. 반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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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우리는 모두 극복해야 할,

타고난 죄의 성향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