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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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9 (목) 불순종이 가져온 비참한 말로 (예레미야 52 : 1~11)

  • seanho
  • 20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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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9 ()

 

불순종이 가져온 비참한 말로

예레미야 52 : 1~11

 

오늘의 찬송

(272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시드기야왕의 악행 52:1~3

 

1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2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3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진노하심이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시드기야왕의 비참한 종말 52:4~11

 

4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5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6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7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들이 아라바 길로 가더니

8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 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시드기야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9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니라

10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

11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

 

 

시드기야왕의 악행 52:1~3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는 사람의 말로는 비참합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몰락은 시드기야왕의 악행과 관계가 깊습니다.

그는 위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고관들의 인정을 받고자 친애굽 정책을 폈습니다.

이는 나라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앞당겼습니다.

그는 산당에서 우상을 숭배했으며 히브리 남녀 노비를 자유롭게 하겠다는 언약도 어겼습니다.

시드기야왕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듣고도 멸망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영적 무지와 불순종으로 인해 유다는 결국 패망합니다.

위기의 때일수록 성도가 따를 것은 구원과 생명을 주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

시드기야는 유다 왕으로서 어떤 잘못을 해결하지 못했나요?

내가 속한 가정, 일터, 공동체에서 진정한 리더십을 나타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시드기야왕의 비참한 종말 52:4~11

 

순종의 대가는 복이지만 불순종의 대가는 저주입니다.

시드기야왕이 바벨론 왕을 배반하자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성을 약 18개월 동안 포위합니다.

이로 인해 예루살렘성은 극심한 기근에 빠집니다. 결국 성벽이 파괴되고 시드기야왕과 모든 군사가 도망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리고 평지에서 붙잡혀 느부갓네살왕에게 끌려가 심문을 당합니다.

시드기야왕은 아들들이 죽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고, 두 눈이 뽑힌 후 사슬에 매여 바벨론에 잡혀갔습니다.

이는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하나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32:3~5).

말씀을 떠나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의 마지막은 비참합니다.

성도는 삶의 안전과 평안을 여는 열쇠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

시드기야왕이 비참한 말로를 맞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또 한 번의 새 시간, 새 기회를 허락하실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 야긴과보아스 20-10-30
      성경은 남유다가 멸망한 것이 왕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한다(2).
      그 결과가 멸망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까닭이다.
      하나님보시기에 선하냐, 악하냐가 기준이다.
      선악의 기준은 내게 없다.
      내게 잘해주고,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그가 선한 사람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다른 길을 가면 그가 악한 사람이다.
      자기 생각에 옳은 길을 간다고 선한 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고 바른 길은 더욱 아니다.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선한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선택이 바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길이 아니면 선한길이 아니라고 하신다.
      얼마든지 악일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늘 많은 사람들이 큰 길, 넓은 길로 간다고 한다.
      그런의미에서 없을 수는 없겠지만 여론정치가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사람이 옳다는 것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해주셔야 한다.
      그런까닭에 매일 성경을 묵상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인생길임을 깨닫는다.
    • 느헤미야강 20-10-30
      시드기야가 왕 위에 오를때가 21세였고
      남유다가 멸망할때가 왕된지 11년이니 그의 나이 32세쯤이었다.
      그의 눈 앞에서 아들들이 죽는 것을 보아야 했고,
      고관들이 죽는 것을 보았다.
      백성들은 먹을 양식이 떨어져 고통의 자리로 빠졌다.
      그리고 나서야 두 눈이 뽑혀서 바벨론에 끌려가 감옥에서 죽을때까지 있었다.
      그는 32세 젊은 나이에 이 모든 것을 경험했다.
      아들들의 나이가 몇 살이나 되었을까?

      주목하게 하는 구절이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3절)이다.
      바벨론과의 약속을 시드기야가 배반하게 되자 일어난 참상이다.
      약속을 어기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바벨론은 철저히 보여준다.
      약속으로 이루어진 관계속에서 한쪽이 언약을 깨트릴 때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도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나는 그 언약을 깨트린적은 없는가?

      시드기야가 눈 떠 있을 때 모든 고통과 절망을 다 보게 하고 눈을 뽑아 데려갔다.
      눈 떠 있을 때 본다고 하다가 더 이상 아주 못 보게 되었다.
      눈 뜨고 어둠속에 갇혀 있던 사람,
      어둠속에 있었다가 감옥이라는 어둠으로 갔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고 생명이라 하셨다.
      빛을 보지 않고 세상보다가 어둠에 익숙해진다.
      빛을 보아야 하는 이유는 어둠을 분별하기 위해서이다.
      세상 길 걸으며 어둠인지 모르고 가면 어둠에로 갈 수 밖에 없다.
      어둠을 걸으면 세상 진실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두 눈 뜨고 살아도 진실을 못 본다.
      고집스럽고,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한다.
      점점 더 귀도 막아 버린다. 결국 듣지도 않는다.

      한 가정의 가장이 눈 멀면 가족이 죽고 고통받는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눈 멀면 얼마나 많은 비극이 있을까?

      남유다의 멸망이야기를 보면서 뭘 깨닫게 하시는가?
      나는 보고 있는가? 분별하고 있는가? 제대로 알고 있는가?
      나는 세상정보를 바탕으로 결정하면서
      말씀을 가지고 세상 살겠다는 사람이면서
      이 말씀이 주는 시야, 관점, 결정근거, 태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권력자와의 약속을 어겨도 이런 처참한 일이 일어나는데
      하나님과의 약속을 모르면, 약속을 안했다하면 모르나 했으면 지켜야 한다.
      신앙의 길 가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영원한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지 않고
      빛 가운데에서 빛 가운데로 나가는 인생 되도록
      눈 떠 있을 때 보고 알고 지키는 자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