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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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금) 죽음의 슬픔을 이기는 재림과 부활 소망 (데살로니가전서 4 : 13~18)

  • seanho
  • 20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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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6 ()

 

죽음의 슬픔을 이기는 재림과 부활 소망

데살로니가전서 4 : 13~18

 

 

오늘의 찬송

(487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믿음으로 살다가 자는 사람들 4:13~14

 

13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재림 때 일어날 일들 4:15~18

 

15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본문 해설

 

믿음으로 살다가 자는 사람들 4:13~14

 

부활과 영생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육체의 죽음은 절망이요 끝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복음을 처음 받아들인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 영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예수님 재림 이전에 죽는 것에 대해 염려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소유한 사람은 육신이 죽었어도 소멸하는 것이 아니기에

죽은 자를 자는 자’(13)로 비유해 설명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몸을 입고 다시 살 것인데, 이를 보증하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14).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을 보고 절망적 슬픔에 빠지는 것은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잠시 보지 못해 안타까워할 뿐 소망 없는 비탄에 잠겨서는 안 됩니다.

성도에게 죽음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부활 영광의 시작입니다.

-

바울이 죽은 자들을 자는 자들로 묘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을 맞는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재림 때 일어날 일들 4:15~18

 

예수님의 재림과 부활은 성도에게 소망이 됩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일어날 사건의 순서를 설명합니다.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릴 때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십니다.

그때 먼저 천사들을 통해  세상 모든 곳에서 택하신 사람들을 모으십니다(24:31).

이는 주님께 소환된 모든 자가 사방에서 나아오는 것으로(14),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은 자들이 주님처럼 새로운 몸으로 부활함을 가리킵니다(16; 고전 15:52).

이어서 살아 있는 자들도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영접합니다.

이렇듯 주님의 재림은 죽은 자나 산 자 모두에게 소망의 날입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입니다(14:8).

-

예수님의 재림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나요?

재림과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삶에서 어떻게 드러날까요?

    • 야긴과보아스 20-11-07
      바울은 죽음을 자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부활과 재림은 잠에서 깨어난것과 같다.
      언제 죽었던지는 중요하지 않다.
      눈을 감고 자다가 눈을 뜨면 그 시간이 재림의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소망없이 살지 않는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이 땅에서의 삶의 태도가 바뀌게 된다.

      예수님은 죽음을 2가지 사건으로 바꾸어 놓으셨다.
      죽음은 잠자는 것이라고 했고, 살아서 주를 믿는자는 죽어서도 살게 될것이라 하셨다.

      죽음이 복음이다. 죽음에 대한 이해가 달라져야 한다.
      죽음은 잠자다가 다른곳에서 깨는 것이다.
      이것을 알면 불안하지 않게 된다.
      죽음의 자리에서 굳 바이라고 하지 않고 굳 나잇이라고 인사하게 된다.

      그런의미에서 죽음 이해야 말로 신앙의 본질임을 깨닫는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던 바울이기에 십자가, 부활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했다.
      죽음이 있고 부활이 있으며 영생과 심판이 있음을 알면 대충 살수 없다.
      젊을때는 시간이 무한정 남아있다고 생각해서 대충산다.
      그러나 시간이 손의 모래처럼, 물처럼 빠져나가듯 없으면 삶의 태도는 진지해진다.
      그런데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면 일거수 일투족 영원과 연결되어 있기에 더더욱 함부로 살 수 없다.

      18절 말씀이 가슴을 찌르는 말이 된다.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18)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다시 오실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부끄럽지 않게 사는 이유로
      다시 만난 주님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자로 만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자고, 그렇게 사는 모습이 좋다고...
      믿음 잘 지키고 흔들리지 말자고
      그렇게 위로 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 말씀이 나에게 질문으로 다가온다.
      네 삶을, 물질을, 시간과 에너지는 어디에 투자하니?
      너는 어디에 소망두고 사니?
      이 소망을 어디에 전하고 있니? 라고

      정말 나는 부활을 믿고, 영생을 믿고, 주님 다시 오심을 믿는가?
      공중에 올라가 죽은자도 만나고
      살았는 자들도 만나고
      하나님나라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가?
      믿으면 나는 더 많이 달라져야 한다.
      이 땅 삶이 전부가 아니다. 결산하는 날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주님 마지막 자리에 가 있을 수 있느냐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오실 재림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이 땅에서의 삶이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