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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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성실한 그리스도인 (데살로니가후서 3 : 6~18)

  • seanho
  • 202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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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3 ()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성실한 그리스도인

데살로니가후서 3 : 6~18

 

오늘의 찬송

(330 어둔 밤 쉬 되리니)

 

 

좋은 전통을 위한 모범적인 삶 3:6~9

 

6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8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일은 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사람들 3:10~18

 

10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13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14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16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17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18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본문 해설

 

좋은 전통을 위한 모범적인 삶 3:6~9

 

좋은 전통은 좋은 본보기에서 시작됩니다.

바울은 복음의 전통에 이어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에 대한 전통을 언급합니다.

스스로 부지런히 일하고 남에게 폐가 되는 의존적 생활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제자의 삶은 이론을 구축해 전수하는 것만으로는 전통으로 계속 이어지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전통이 되려면 전달자의 삶이 피전달자가 따를 수 있는 표본으로 확실하게 제시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말보다는 부모가 실제로 보여 주는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본받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그가 전하는 가르침과 자신의 삶이 일치했습니다.

좋은 전통은 말에서 나오지 않고 삶의 본으로 형성되어 대를 이어 갑니다.

-

바울의 가르침과 삶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내가 생활하는 모습은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의 본이 되나요?

 

일은 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사람들 3:10~18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시하고 영적인 것을 강조하는 종교인들이 쉽게 빠지는 오류는 현실 생활에 대한 무책임입니다.

일부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종말론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수고로 나온 결과만 취하고, 공허한 말로 정작 다른 사람들이 책임지게 될 일만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복음 사역에 전념하면서도 가능한 한주변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

직접 장막을 만드는 수공업에 종사하면서 밤낮으로 부지런히 일했습니다(8; 고전 9:12).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확실하게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왕 되신 하나님의 완성된 다스림을 현재로 끌어옵니다.

그리고 지금 그 하나님 앞에서 매사에 성실하게 일하며 진실하게 이웃을 사랑합니다.

-

일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으며, 그 원인은 어디에 있었나요?

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성실한 생활인인가요?

    • 느헤미야강 20-11-14
      말세에 성도가 살아가는 방향과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
      종말은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었으나
      재림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는
      그 이미와 아직 사이를 사는 사람들이다.
      다만 다시 오실 그날인 ‘아직’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이스라엘의 결혼풍습에는 2가지가 있다.
      약혼과 결혼식이다.
      약혼식은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서약을 하고 포도주를 먹는다.
      포도주는 반쯤 신랑 신부가 마시고 나머지 반은
      서약서위에 붓는다.
      그렇게 함으로 이 서약은 끊을 수 없음을 맹세한다.
      그리고 신랑인 집으로 돌아오며 결혼식 날짜를 곧 알려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본식에 해당되는 결혼식 날짜는 신랑이 잡는게 아니라
      신랑의 아버지가 잡는 것이다.
      그래서 신랑도 그 날짜는 모른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 이미 오심과 다시 오실 날을
      이 결혼식에 비유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신랑되신 예수님과 그의 신부된 성도들의 관계로 설명하시고
      지금 내가 예수 믿은 관계를 약혼에 비유하고
      다시 오셔서 영원히 함께 하게 될 것은 결혼식에 비유하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다시오실 날은 나는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신 것이다.

      다시 오심을 아는 사람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미 오심은 성취하셨기에 다시 오실 것도 이루실 것을 믿는 사람은
      게으르게 살 수 없고, 나태할 수 없으며, 무질서하게 살 수 없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의 종말주의자들은 일하면 뭘하냐,
      게으른 사람들과 나태한 사람들이 많았다.
      게으르면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그래서 바울과 일행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 전도하고 가르쳤다.
      무질서하게 사는게 하나님뜻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았다.
      복음전도자라는 명목으로 무상으로 대접받는것을 조심했다.
      수고하고 애써서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다.
      이것이 종말에 대한 바른 태도이자,
      잘못된 종말주의자들과 구별된 모습임을 보이고자 했다.

      그런데 종말주의자들과 바울의 일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
      한가지 귀한 통찰을 얻었다.

      잠19;6,7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왜 부자가 되어야 하는가? 왜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
      부자되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부담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부자로 사는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나를 통해서 그들이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주님을 알기 원할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스스로 일을 한 것은 복음의 가치를 격하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복음을 전하는일에 혹 사례가 목적이 되어 복음이 오해 받을까봐서이다.
      예수 믿는다는데 안 믿는 사람처럼 돈 버는게 목적인것처럼
      비춰지고 사는게 은혜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오늘같은때에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되었으면 좋겠다.

      고전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바울은 복음사역을 하면서 사례를 응당히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안 받은 것은 복음에 장애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텐트메이커인셈이다.
      바울처럼 일하면서 헌금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성도야말로 탁월한 복음의 사람들이다.
    • Coramdeo 20-11-14
      그리스도인은 모든일에 성실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되 그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있어야함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한절묵상중  교회는 내 필요를 다른 사람을 통해 채우는 곳이 아니고 내 수고와 사랑을 통해 다른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곳이라는 말씀이 와 닿는다
      나는 다른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한것이 거의 없는것 같다
      여러가지 모양으로 헌신하시는 성도님들에게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떄로는 열심히 헌신하시는 성도님들을 다른방향으로 오해했었던 부분들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내가 헌신하지 못하면 다른성도님들의 헌신에 가타부타 말할 가치도 없다
      무엇보다  모든 주님의 지체들의 헌신과 봉사의 동기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되어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