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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묵상: 12.20(토) 베드로, 실패이후 다시 부르시는 주님, 요21;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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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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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15–20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본문 해설
불을 사이에 둔 만남: 실패 이후 다시 부르시는 주님
다시 물으시는 사랑
요한복음 21장은 부활 이후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장면에는 불이 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던 밤에도 불이 있었고,
예수께서 다시 베드로를 부르시는 아침에도 불이 있다.
같은 베드로, 같은 불, 그러나 전혀 다른 만남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왜 그랬느냐”고 묻지 않으신다.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경고하지도 않으신다.
예수님은 오직 한 가지를 세 번 묻는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안다.
이 질문이 자격을 묻는 질문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는 질문이라는 것을.
베드로는 더 이상 큰소리치지 않는다.
“내가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이렇게 말한다.
“주님, 주님께서 아십니다.”
이 고백이 회복의 시작이다.
주님을 아는 믿음이 아니라,
주님께 알려진 존재로 서는 믿음이다.
실패 이후에 드러나는 진짜 만남
대림절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계절이지만,
동시에 예수님께 다시 불림 받는 계절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베드로처럼 실패한다.
말과 선택과 침묵으로 예수를 부인한 날들이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실패 이후, 나는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가
아니면 그 불가에서 도망치는가
가룟 유다는 예수를 만났지만
자기 죄를 끌어안은 채 주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베드로는 무너졌지만
주님의 부르심 앞에 다시 섰다.
같은 실패, 다른 결말.
차이는 다시 만남을 선택했는가에 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중
어떤 이는 구원을 얻고 제자의 길로 들어섰고,
어떤 이는 끝내 자기 길을 고집하며
심판과 멸망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오늘 나의 선택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너는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시면서도
한 가지를 분명히 하신다.
“네가 젊어서는 네가 원하는 곳으로 다녔으나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라.”
제자의 길은
자유를 잃는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참된 방향을 얻는 길이다.
그리고 묵상본문은 아니지만 21절에
예수님은 베드로가 다른 제자 요한을 바라보자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그가 어떻게 되든
너는 나를 따르라.”
비교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속도, 다른 사람의 결말을 계산하지 말라.
대림절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 나는 누구를 바라보며 걷고 있는가
오늘 나는 어떤 만남을 소망하는가
예수님과의 만남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분을 만난 사람은 반드시 방향이 바뀐다.
• 자기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 안전에서 순종으로
• 구경꾼에서 제자로
대림절은
예수님을 정보로 아는 계절이 아니라
예수님을 다시 따르기로 결단하는 계절이다.
오늘 나는
도망친 불가의 기억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다시 차려진 아침 불가로 나아갈 것인가.
예수님은 오늘도 묻고 계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이렇게 부르신다.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만남이
오늘 나의 삶의 방향이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실패자를 버리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를 세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사용하신다.
베드로의 회복은 모든 성도에게 주시는 복음의 메시지이다.
예수님은 사랑을 고백하는 자에게 다시 사명을 맡기신다(요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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