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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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2 (토) 겸손과 선행으로 악을 이기십시오(롬 12 : 15~21)

  • seanho
  • 202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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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2 ()


겸손과 선행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로마서 12 : 15~21

 

오늘의 찬송 

(218 369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12:15~16

 

15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2:17~21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본문해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12:15~16

 

사람에게 마음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큽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본래 모습은 즐거워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아픔에 함께 눈물짓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깨어진 인간의 마음은 공감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며 상황의 좋고 나쁨에 휘둘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 속한 우리는 죄가 주장하는 대로 마음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지혜 있는 체하거나 높은 체하지 말고 예수님이 삶으로 보여 주신 모범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분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2:5~8).

성도는 이기적인 세상의 마음이 아닌 예수님의 마음, 그분의 겸손과 비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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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안에 속한 성도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나요?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내가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마음은 무엇인가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2:17~21

 

세상은 원수를 미워하고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당한 만큼 갚아 주는 것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하지만 말씀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합니다.

살면서 겪게 되는 악한 일과 억울한 일을 악으로 되갚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잘잘못을 결정하고 판단하는 최종 권위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리고 목마른 원수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어

그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회개에 이르도록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으로 섬겨 끝내 화목한 친구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선은 모든 악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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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원수를 어떻게 대하라고 권면하나요?

모든 사람과 화목을 이루기 위해 내가 힘쓸 일은 무엇인가요?

    • seanho 20-08-22
      묵상

      오늘 말씀에서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목케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화목케하라는 명령은 이미 예수님께서 그 분의 삶가운데 행하신 삶의 모습으로서
      우리에게 성화의 한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 말씀인것 같다.
      이 말씀 중 특히 15-16절 말씀은 선교사를 준비할때 마음에 와닿던 말씀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선교지로 향했던 것이 생각이난다.
      하지만 내 결단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기는 커녕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다른 가치관에 얼마나 상대방을 무시하고 비판했는지 모른다.
      너무 빨리 밑바닥이 드러남을 경험했었고, 그게 다행이었다. 
      마음을 같이하는 것도 도저히 불가능했고, 마음은 항상 교만해 있었다.
      그런시간들을 보내다가 이 15-16절을 행하지 못하는 실패의 원인이 어디있을까 고민해 봤다.
      가장 먼저는 내 자아가 살아 날뛰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그런 삶의 모습을 나누려고 하는 대상을 먼저 멀리 있는 사람들, 가끔 보는 사람들로 정한것 이라고 생각했다.
      무슨말이냐하면, 슬퍼하는 자들과 슬퍼하고, 기뻐하는 자들과 기뻐하는 것을 먼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 즉 가족과 동역자들과
      먼저 했어야 하는데 나는 가끔 만나는 선교지 사람들과 함께 그런척을 하려고 애쓴것 같다. 그래서 밑바닥이 금방드러날수 밖에 없었다.
      16절의 말씀도 마찬가지로 가정과 동역자에게 먼저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대상들에게 먼저 그렇게 보이려고 가식적, 형식적으로 행했었던 것 같다.
      그때 깨달은 나만의 결론은 그렇다.
      먼저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나의 많은 모습을 알고있는 사람에게 이것을 행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사람처럼 보여지려고 행한다면 그것은 가식이고, 형식이고, 사역의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후로는 가정과 동역자에게 예수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새로운 결단을 하게되었다.
      꼭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이들에게 내 안에 예수님의 모습이 보여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