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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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6 (목) 율법 아래 있는 죄인의 곤고한 외침 (로마서 7 : 7~25)
- seanho
-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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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건
2020.08.06 (목)
율법 아래 있는 죄인의 곤고한 외침
로마서 7 : 7~25
오늘의 찬송
(새 407 통 465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죄와 율법의 작용 원리 7:7~13
7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죄 아래 있는 자의 외침 7:14~25
1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죄와 율법의 작용 원리 7:7~13
율법 앞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며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유대인으로 살던 자신의 삶의 방식을
이담 아래로 죄 아래 사는 모든 사람의 삶의 방식과 연결짓습니다.
경건한 유대인으로 살던 때 그는 자신이 의로운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결코 자신이 의롭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특히 십계명 중 열 번째 ‘탐내지 말라’는 계명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 자신을 떠올리며,
거룩하고 선한 율법과 계명이 죄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사망 선고를 내렸다고 고백합니다.
이렇듯 선한 것을 통해서도 사망을 이끌어 내는 것이 죄의 위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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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앞에서 인간이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사실이 어떻게 드러나나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전과 현재 내 모습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죄 아래 있는 자의 외침 7:14~25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마음 따로 몸 따로’라는 말을 합니다.
바울도 그와 같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유대인으로 살 때 그는 자신이 율법대로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 후 과거의 자기 모습을 보니 죄악투성이였습니다.
선한 율법의 요구를 알면서도 악을 행했습니다.
그는 자기 속에 있는 죄가 자기를 주장했음을 알았습니다.
마음으로는 율법을 따르길 원했지만 행할 능력이 없어서 죄에 사로잡힌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곤경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고 탄식했습니다.
이렇듯 몸과 마음이 분열된 소망 없는 인간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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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유대인으로 살았던 관거 자기의 모습을 어떻게 묘사하나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느끼는 내적 갈등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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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긴과보아스 20-08-06
- 바울이 발견한 비밀은 내 속에 두 마음의 법이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겉사람과 속사람이다.
누가 이길까? 결과는 어떤가?
항상 육신의 죄의 법이 마음의 법을 이기고 있음을
마음의 법이 육체의 법에게 사로 잡힌다.
율법은 선한 것인데, 율법을 행할 능력이 없어
선한 율법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를 보아도 하나님뜻대로 살고 싶다고 하면서도 결과는 늘 그렇지 못하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의 은혜를 알아
날마다 말씀 안에서 살겠다고 고백하고 노력하지만 또 넘어진다.
내 안에 율법을 정해놓고 노력해서 살게되면 교만해지고,
그렇지 못하면 죄의식속에 빠진다.
내 속의 율법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그 판단으로 내가 올무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내 안에 항상 선한 마음보다 악한 마음에 이끌려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근원적인 죄인임을 깨닫는다.
이것은 바울의 탄식이 아니라 나의 탄식이다.
내 안에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
내가 선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행해서 구원받는것도 아니다.
나의 선한 마음이 구원얻는 것도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를 살리실 분은 오직 십자가 은혜뿐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고 교만하지 않기. -
- 느헤미야강 20-08-06
- 내 마음이 싸움터이다.
군인들의 비극이 전의를 상실한 것이라면
그리스도인의 비극은 내면의 전쟁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혹 관심을 가지고 있다해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고뇌와 갈등이 있다.
내가 때로 도덕적이지 못한 삶을 사는 이유가 도덕을 몰라서가 아니다.
한 사회가 깨끗해지고 개인이 새로워지는 역사는 영적 부흥의 때였다.
내가 새로워지는 역사는 역시 마찬가지이다.
로마서를 묵상하며 깨닫는 것이 있다.
내가 믿음의 삶을 살고 영적으로 승리하기 위한 비결을 알게 한다.
첫째는 율법의 기능이 구원이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율법은 곧 나에게 죄를 깨우치고 구원자의 필요성을 자각시킨다.
둘째는 나의 본성을 알게 하신다.
내게는 거룩함을 향한, 선한 것을 향한 소원이 있다.
이것은 주님이 주신 생명 때문이다.
주님은 분명히 새 생명을 주시고 새로운 성품을 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명을 압도하는 내안의 또 다른 힘이 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부패성, 죄악의 힘이다.
나를 굴레 씌우고, 나를 구속하고, 나를 지배하는 죄악의 힘이
아직도 나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내 마음속에 들어온
생명의 힘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성경은 나의 모순, 갈등, 전쟁의 원인이 내 속에 거하는 죄성이라고 한다.
내 속에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내 속에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희망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 때문이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죄악의 형벌에서 구원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죄악의 세력과 싸우고 있다.
이 싸움은 당연히 있게 되는 싸움이라는 것을 안다.
바울도 이 싸움의 실체를 인정했다.
이 싸움은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싸움이다.
이것은 성령님의 도움을 통해서 가능하다.
내 육신의 법에서 해방되는 일은 오직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 밖에 없음을 알게 하신다.
이것이 매일 빼놓을 수 없는 묵상의 은혜이고
조금씩 주님 닮아가고자 하는 결단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