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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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금)언약 백성이 실현할 이웃 사랑과 창조 질서(신22 : 1~12)

  • seanho
  •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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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2 ()

 

 

언약 백성이 실현할 이웃 사랑과 창조 질서

 

 

신명기 22 : 1~12

 

 

오늘의 찬송

 

(463 518 신자 되기 원합니다)

 

 

이웃을 배려하는 삶 22:1~4

 

 

1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2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또는 네가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려 줄지니

3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형제가 잃어버린 어떤 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 본 체하지 말 것이며

4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

 

 

창조 질서를 지키고 생명을 존중하라 22:5~12

 

 

5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

6길을 가다가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의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보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7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되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8네가 새 집을 지을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

9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10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11양 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12너희는 너희가 입는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

 

 

본문 해설

 

 

이웃을 배려하는 삶 22:1~4

 

이웃 사랑은 말이 아닌 자기희생의 섬김을 통해 증명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들판에서 길 잃은 소나 양을 발견하면, 는 즉시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주인이 누군지 모르면 그 가축을 집으로 끌고 가 보살핀 뒤 주인을 수소문해서 찾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옷이나 다른 물건들을 거리에서 습득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서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면 주인을 도와 그 가축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이 계명들은 나와 상관없는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못 본 체하는 사람의 본성에 역행합니다.

진정한 형제 사랑은 이러한 본성을 거슬러, 손해를 감수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입니다.

-

형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손해를 감수학서라도 도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의 본성을 넘어서는 이웃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창조 질소를 지키고 생명을 존중하라 22:5~12

 

창조 원리를 따르는 것은 성도의 거룩함을 반영하는 척도입니다.

하나님은 남녀 의복을 명확히 구별해서 입도록 명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성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혼합금지에는 두 종자를 섞어 뿌리는 것, 소와 나귀에게 한 멍에를 메워 밭을 갈게 하는 것,

양털과 베시를 섞어 옷감을 짜는 것 등도 포함됩니다.

하나님 백성은 창조 세계의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합니다.

새 둥지에 어미와 새끼가 함께 있으면 어미는 풀어 주고 새끼만 취할 수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는 옥상에 난간을 만들어 낙상을 방지해야 합니다.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다는 것은 자신이 구별된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보존하고, 구별된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

혼합을 금하시고 백성의 겉옷 네 귀에 술을 달도록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조 세계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내가 실천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가요?

    • seanho 20-05-22
      묵상

      오늘의 말씀의 전반부를 보면서 하나님은 이웃을 배려하는 것에 대해서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대접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언약백성에게 그렇게 행할 것을 요구하신다.
      나는 많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생각하는 어떤 대우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는 모습으로 나를 대우해주지 않으면 기분나빠할 때가 종종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내가 그런 대우를 받고자 하면,
      먼저 그에게 어떤 대우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렇게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1절 말씀을 보니까, 길 잃은 남의 양을 못본채 하지 말라고 하신다.
      너의 양이 소중하다면, 남의 양도 귀하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인 것 같다.
      내 것이 귀하고 내가 귀하면, 남의 것도 귀하고, 다른 사람도 귀한 것을 알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명령은, 남을 자신을 생각하는 것 처럼 하라는 이 명령은 무엇을 위함일까?
      이것은 이웃간에, 관계 간에 분쟁이 없도록 하고자 하심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머리로한 몸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공동체 안에 이러한 태도는 필수 인것 같다.
      우리는 한 몸이면서도 몸의 다른 일부가 전혀 귀하지 않은 것 처럼 생각하는 일이 있지는 않았는가?
      한 몸, 한 교회 인것을 기억하며 분쟁이 없게 다른 지체를 귀히 여기는 은혜의 공동체를 기대한다.
    • 야긴과보아스 20-05-22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가나안 공동체,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두 가지 조건이 등장한다.

      첫째, 서로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1-4절은 분실물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한 계명이다.
      아는 사람의 분실물일 경우에 당연히 찾아주어야 한다.
      분실물이 누구의 것인지 모를 경우 잘 보관하고 있다가 주인이 나타나면 반드시 돌려주라 하신다.
      아마도 그때는 작은 마음을 이루고 살았던 시대였기에 가능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때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타인의 상황에 민감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하며,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공동체를 향한
      마음을 가지는 태도나 정신을 갖는다면  아름다운 공동체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에베소와 골로새서는 교회 공동체를 한 몸으로 표현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이다.
      그리셔 우리 모두는 각자 그 몸의 지체들이다.
      내가 길을 걷다가 무릎을 부딪쳐 다치게 되면  내 마음은 걱정하고, 입은 아프다고 외치고,
      눈에는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반응하며, 손은 무릎을 어루만진다.
      무릎을 다쳤는데 온 몸이 반응한다. 살아있어서이다.

      교회 공동체, 역시 형제의 아픔을 돌아보는 공동체이다.
      누군가 아파할 때 함께 반응하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온 몸이 그 지체에게 집중하여 반응할 수 있다면 건강한 공동체이다.

      본문은 마치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의 적용부분 같은 말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니한지는 이웃에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보고 알 수 있다고 하셨다.
      여러번 ‘못 본체’(신22;1,3,4) 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세상의 삶이 ‘못 본체’하는 삶으로 특징지어진다면 너희는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듯 하다.
      적당히 모르는게 최고라며,  그것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할거라며 나서지 말라고
      자신만을 바라보는 삶이 지혜인 마냥 만연된 세상에서 성경는 ‘못 본체’ 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배려이고 못 본체가 아니라 사랑이다.
      배려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반드시’(신22;1)라고 말씀하심이 깊게 다가온다.

      둘째,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한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고,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5)
      남자는 남자의 역할을 다하고, 여자는 여자의 역할을 하라고 말씀한다.
      서로 바뀌어서는 안되고 자기 역할을 하라 하신다.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게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다.
      이것은 자기 욕심대로 파괴하고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잘 보고하고 유지하라는 의미였다.
      그 안에서 문명을 만들어가라는 뜻이었다.
      본문은 새를 잡을 때, 어미새와 새끼를 함께 취하지 말라고 하신다.
      어미는 놓아주어 생태계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하신다.
      성경에는 자연을 지속 가능하게 다스리는 자기 역할을 다할 것을 명령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경계를 넘어갈 때 언제나 자연과 생태계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하나님의 창조섭리속에 들어있는 원리이다.
      이번 코로마19 바이러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도록 하는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내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을 늘 잊지 말자.
      힘든 사람은 없는지, 가족들에게 고민이 있진 않은지,
      내 동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없는지 등 주변 사람들의 일상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겠다.

      내 역할을 다하는 거다.
      동물과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행동양식을 구체화 하고
      나에게 주어진 내 역할에 충실하면서 환경을 유지하는데 노력하기.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쓰레기 줄이기, 필요한 것만 쇼핑하기...

      내 역할을 능숙하게 잘 해내되,
      주변 사람들과 도시와 생태계, 환경의 지속 가능성까지도
      돌아보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
    • Coramdeo 20-05-23
      말씀을 읽을때마다 깨닫는것이  인간은 참 어리석다라는 생각이 든다
      쉽게 말하면 시험을 볼때 이미 답을 알려줬는데도 답대로 안쓰고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쓰는것과 같은 느낌?
      말씀이 너무 구체적이라 내가  하나님께 뭐라고 변명도 못하겠다
      요즘시대는 지나친 관심은 사생활 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점점 무관심해지는것 같다
      신앙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인것같다
      기도제목을 공유하는것에 대한 불편함도 있고 ....
      모두가 한몸을 이루고 있다고 진정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나의 모든것을 나누기가 쉽지는 않을것같다
      야긴과 보아스님 묵상 처럼 나의 몸 한구석이 아프면 나의 몸 전체가 반응을 나타내듯이
      신앙공동체에서도 같은 반응을 나타낼수 있다면 .....
      그런데 진정으로 이러한 마음이 없는 내 자신의 내면을 본다
      지체들의 기도제목이 나의 기도제목처럼 전심을 다해 기도 할수 있어야 되는데..
      속된 말로 나와 코드가 안맞는 분들에게는 별로 관심을 두지않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너무 깊숙히 인볼브되면 피곤하다는 생각으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세상적인 잣대로 지체를 평가하고 있는 모습들은 없는지 돌아본다
      말씀앞에서 나를 돌아보니 정말 허물투성이고 아직도 나의 신앙의 나이는 어린아이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말씀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신앙이 좋은것이 아니라 말씀 한구절이라도 삶가운데서 실천하는것이 성숙한 신앙인임을 깊히 깨닫는다
      나의 육신의 필요도 구하여야겠지만 나의 마음의 밭을 일구어 달라고 기도하는것이 먼저인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