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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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7(화) 참 주인을 잊은 자에게는 그분의 심판이 임합니다(막12:1-12)

  • seanho
  • 20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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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7 ()


참 주인을 잊은 자에게는 그분의 심판이 임합니다

 

마가복음 12 : 1~12

 

오늘의 찬송

(304 404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은혜를 잊은 악한 농부들 12:1~8

 

1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3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5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6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7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버려진 돌이 머릿돌 되다 12:9~12

 

9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10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본문해설

 

은혜를 잊은 악한 농부들 12:1~8

자신의 참주인을 잊어버리고 주인 노릇 하려는 것이 죄입니다. 포도원 농부 비유는 성전 정화 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11:28)라고

항변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주인은 하나님을, 농부들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주인의 은혜를 잊어버린 악한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들(선지자들)뿐 아니라

그 아들(예수님)까지 무참히 죽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자신에 대한 그들의 음모가 결국

 하나님을 향한 반역임을 깨우치십니다.

성도는 자신의 참주인을 알고, 자기 백성을 향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

포도원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죽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지금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지, 내가 주인 노릇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세요.

 

 

버려진 돌이 머릿돌 되다 12:9~12

주인의 은혜를 저버리고 자기 욕심을 따라 행하면 결국 심판을 받습니다.

포도원 주인(하나님)은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권세 있는 존재입니다.

주인이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애초에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욕심과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해 그들은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건축자들은 종교 지도자들을, 모퉁이의 머릿돌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10).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돌을 버린 것처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업신여겨 죽이지만,

그분은 모퉁이의 머릿돌처럼 요긴하게 되실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모든 믿는 이의 주 되실 것임을 가리킵니다.

인생의 참 주인을 기억하고 그분을 삶의 초석으로 삼는 것이 지혜입니다.

-

모퉁이의 머릿돌은 무엇을 상징하나요?

예수님을 쓸모없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인생의 참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 seanho 20-04-07
      묵상

      포도원의 주인은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경작하고, 누릴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
      농부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 땅에서 살고, 먹고, 맘것 경작할 수 있는 것은 주인의 은혜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청지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청지기가 주인이 되어 버리는 순간
      모든것에 감사 할 수 있는 곳이, 모든 것에 불만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바뀌는 것 같다.
      그렇게 예수님의 비유에서 농부들은 청지기라는 것을 잊고, 은혜를 잊고 극악무도한 죄를 범한다.
      그들은 왜 주인의 하인과,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까지 죽이는 선택을 할까?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요구한 것이 그렇게 부당한 것일까?
      2절 말씀을 보면 "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라고 되어있다.
      부당한 값이 아니라, 주인으로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대가를 말한다.
      그들은 주인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싫었다, 청지기라면 당연히 감사하게 주인에게
      정당한 대가를 드릴테지만 이들은 지금 청지기가 아니다.
      주인 행세를 하고 있고, 그들은 진짜 주인을 강도처럼 여기는 것 같다.
      이 모습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려는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어쩌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당한 삶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인색한 현실의 신앙인들이기도하다. 
      '소출'이라는 단어를 헬라어에서 '카르포스'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는 열매라는 단어로 쓰이기도하고,
      성경에서의 의미로는 '결과물'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 마땅히 요구되는 행위)이라고 사용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청지기들에게 결과물을 요구하신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하셨지만 내 삶의 주인은 분명 하나님이다."라는 것을 드러내는 삶의 결과물.
      고난주간 가운데 내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마땅히 받으실 결과물이 내 삶에 부족하지 않기를.
    • 느헤미야강 20-04-07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하늘의 소망을 등한시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 때 즉시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기다리시며 그 분의 심부름꾼을 보내신다.
      그 사람이 믿음을 회복하여 하늘의 사람으로 살기 원하신다.
      때로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하시고,
      곧 안락한 삶을 거두시기도 하거나,
      질병이나 사고로 건강을 약화시키게도 하신다.
      재난이나 파산, 실직 등으로
      그 분의 강경한 의사를 표현하시기도 하신다.
      말이 쉬워 늘 조심스럽지만
      고난은 분명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다.
      내 입장에서는 거부하고 싶은 사랑이다.
      그렇게까지 그 분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은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 일을 여전히 하고 계신다.
      물질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영적인 길을 제시하여 주시고,
      육적인 사람에게 보다 나은 삶을 일러주시기도 하며,
      세상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하늘나라를 보여주시기도 하신다.
      그 길을 계속 가면 위험하기에,
      그 끝에는 절망과 사망이 기다리고 있기에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정반대의 효과적인 것으로 노크하신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할때가 많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데
      마치 본문의 악한 농부들과 흡사하다.

      아무리 돈이 많고 건강하고 행복하다 해도
      영혼이 피폐해지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복이 아니다.
      비록 가난하며 건강하지 못하고 행복하다고 여기지 못할때에도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라면 그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구약시대만이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내신다.
      메신저가 보내주는 소식은 내 눈에 좋은 것도 있지만
      달갑지 않은 것도 있다.
      행복, 풍성한 물질, 형통 등도 있지만,
      불행, 가난, 고난, 사고 등도 있다.
      모습은 달라도 내용은 같다.
      다 나를 살리는 것이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메신저가 내가 기대한 모습으로 오는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늘 내게 필요한 것은 분별하는 지혜이다.
      나는 기회를 기회로 알고 경고를 경고로 알아듣기를 원한다.
      어떠한 형태로 나에게 찾아오든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을 잘 깨닫고,
      착오 없이 그분의 복된 길로 가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