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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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9 (목)고발과 불법 재판, 침묵 속에 빛나는 순종(막15 : 1~15)
- seanho
- 2020-04-09
- 407 회
- 2 건
2020.04.09 (목)
고발과 불법 재판, 침묵 속에 빛나는 순종
마가복음 15 : 1~15
오늘의 찬송
(새 144 통 144 예수 나를 위하여)
침묵하시는 예수님 15:1~5
1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비겁한 빌라도 15:6~15
6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본문해설
침묵하시는 예수님 15:1~5
거짓 없는 진실은 침묵 속에서 빛을 발합니다.
예수님의 체포와 재판은 꼭두새벽에 벌어졌습니다.
재판은 ‘즉시’,‘곧’신속하게 진행이 되었고(1절), 어떤 죄목도 발견할 수 없어서
신성 모독이라는 명목을 씌우는 등 문제가 많은 재판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형 집행권이 없었기에 빌라도 총독에게 사형 집행을 요구합니다.
대제사장들은 여러 죄목을 꾸며 내서 예수님을 고발하고 빌라도는 심문을 계속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왕임은 당당히 시인하시지만 고발에 대해서는 침묵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 도리어 빌라도가 당황합니다.
진신은 아무리 침묵해도 감출 수 없고, 거짓은 그 어떤 소음으로도 덮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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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대제사장들의 고발에 아무 대답도 하시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의 침묵이 공동체에 유익이 된 경우는 언제인가요?
비겁한 빌라도 15:6~15
아는 것이 책임 있는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바른 신앙입니다.
빌라도는 로마황제가 위임한 권한을 가지고 공의롭게 재판을 진행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님을 넘긴 것을 알았습니다(10절).
심지어 무리에게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14절)라며 발끈합니다.
언뜻 빌라도가 의로워 보이고 예수님을 편들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고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면서
그의 얄팍한 동정심도, 뒤늦은 깨달음도 다 묻혀 버립니다.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15절) 공의를 저버립니다.
아는 것, 공감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에 진리 앞에서 공의를 저버리지 않고 책임 있는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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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는 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넘겼을까요?
결정적 순간에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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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anho 20-04-09
- 묵상
유월절 절기에 따라서 한 사람을 놓아주려고 하는데
군중들은 예수가 아니라, 강도를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소리친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죄를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군중들의 바램대로 바라바를 놓아준다.
세상은 이렇게 진리에 대해서 무감각 하고, 관심도 없다.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이고, 자신의 안위가 우선이다.
그렇게 세상 권세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악한 선택을 함에 주저함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이라고 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것도 아닌 것 같다.
우리가 곧 그런 세상인 때도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죄를 택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우리가 세상에 속한 자 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런 세상에 대해서, 그런 유대인에 대해서, 그런 빌라도에 대해서, 그런 나에 대해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흔쾌히 지어주셨다.
우리가 진리에 관심이 있어서? 우리가 선해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서?
아니다. 단 한 가지도 우리를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셔야할 이유가 없음에도 주님이 그런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그 죄 된 세상을 바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려고 그런 선택을 하셨다.
그 사랑과, 그 은혜가 나의 삶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으로 바꿔 가심을 믿는다. -
- 느헤미야강 20-04-10
- 예수님의 고독
마가 15;1-15
빌라도에게 넘겨진 예수님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는
물음에만 대답하시고 그 외는 침묵하고 계신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 놓아주려하나
도리어 대 제사장들이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다
이방인인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죽일만한 죄가 없음을 알고 놓으려 하나
도리어 유대인 대제사장들은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다.
기가 막히고, 분통이 터질 일이다.
지난번에는 베드로가 저주까지 해 가며 주님을 배반하더니
오늘은 대제사장들이 선두에 서서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빌라도의 뜰 안에 홀로 서계신 주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보게된다.
내 안에 깊이 묻어 두었던 “배신” 이란 단어가 다시 떠오른다.
지난 몇 달 동안만을 생각해도 난 그 배신의 상처를 안고 있다.
누구보다 애쓰고 힘이 되어주려 했었다고 생각했으나
정직하고 진실이 아닌 것에 쉽게 등돌리는 모습에 충격도 있었다.
아프고,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은
언제나 배신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베드로의 배신과 대제사장들의 행동이 나를 슬프게 한다.
예수님의 고독이 나에게도 흘러 오는 것 같다.
저들이 그렇게 배신하고 죽여야한다고 소리를 지를 때,
주님의 심정이 어땠을까?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나 역시 그렇게 배신의 시간들 속에 홀로 고독했었다.
하지만 그 고독한 시간들 때문에 주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었고,
그런 훈련을 통해 난 모든게 더 명확해 졌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기로 말이다.
지금 예수님은 고독하게 빌라도의 뜰안에 서 계신다.
예수님의 아픈마음이 전해지며 너무 나도 주님께 죄송하다.
이제 곧 예수님은 홀로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신다.
나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이 당한 배신에 비하면,
주님의 고독한 십자가의 길에 비하면,
내가 받은 상처쯤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하신다.
에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용서하셨고.
십자가상에서 못을 밖는 저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지금 나에게 다시한번 더
진정한 용서를 가르치시고 계신다.
예수님의 용서.
때가 되어 내 안에도 용서와 품어내는 것.
그런 열매가 맺혀지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