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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화) 삶의 현장에 찾아오시는 부활의 주님 (요21:4-14)
- seanho
- 2020-03-17
- 468 회
- 2 건
020.03.17. (화) 생명의 삶
삶의 현장에 찾아오시는 부활의 주님
요한복음21:4-14
오늘의 찬송
(새 290 통 412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디베랴 호수에서 만난 부활의 예수님 21:1~7
1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예수님이 육체로 부활하신 증거 21:8~14
8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2. 본문해설
디베랴 호수에서 만난 부활의 예수님 21:1-7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 몇 명이 디베랴(갈릴리)호수에 물고기를 잡으러 갑니다.
선교하러 가지 않고 생업의 장소로 간 것에 대해 성경은 그들이 예수님 명령을 어겼다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생업의 현장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그들이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제자들은 누군가의 말을 듣고 기적적으로 물고기를 많이 잡고 나서야
비로소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이 일상의 현장까지
직접 찾아오시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가 일상에서 그분을 찾고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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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왜 갈릴리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내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이 그 자리에 찾아오실 수 있다는 인식은 왜 중요할까요?
예수님이 육체로 부활하신 증거 21:8-14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전에는 당시 제자들 중 누구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그분이 부활하신 몸으로 직접 나타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1,14절).
부활하신 예수님을 디베랴 호수에서 만난 7명의 제자들은
그때 잡은 물고기 개수도 정확히 기억했습니다.(2,11절).
요한이 이것을 구체적으로 기록함은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으로 실재한 사건임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생선 및 떡(빵)으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예수님이 육체로 부활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으나 성경의 증언을 듣고 믿는 복된 사람들입니다.(요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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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부활 후 식사하신 것과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 개수가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나요?
*오늘의 기도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섬세하게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
현실과 이성에 갇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제 눈을 사랑으로 밝혀 주소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뜨겁게 체험하며,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교제의 삶을 이어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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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anho 20-03-17
- 묵상. 또 다시 찾아 오시는 주님
예수님이 3년이 넘는 시간을 공을 들여서 제자양육을 했지만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결과는 참 이상하다.
예수님과 같은 사람 12명이 된 것이 아니라,
배신자가 한 명 생겼고, 4명이었던 어부가 7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예수님의 양육은 다 끝난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디베랴에서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가야 할 것 까지도 다 아시면서
처음에 베드로를 부르시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7명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으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어부를 직업으로 삼았던 사람이 4명이나 있었지만, 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한 그 실패의 순간...
고기가 만선이어도 전혀 기뻐할 수 없는 제자들의 심정이었겠지만, 물고기 마저 하나도 안 잡히니
얼마나 상실감과 패배감이 짙었을까?
예수님은 그런 실패 순간에 제자들을 찾아가신다.
그리고 처음 베드로를 부르실 때 와 같이 말씀하신다.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져 보아라.'
베드로는 그 분이 주님이라는 것을 언제 눈치 쳇을까?...
예수님은 그렇게 실패한 제자들을 찾아가신다.
제자로서도 실패하고, 삶에서도 실패하고, 믿음도 실패해 보이는 제자들에게 먼저 찾아가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탓하거나, 혼내거나, 원망하지 않으신다.
그저 처음과 같은 음성으로 연약하고, 부족한 그들을 불러 주신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의 부르심에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선택을 했다면,
부활한 주님이 찾아 왔을 때는 겉 옷을 벗고, 자신을 물에던지며 예수님께로 나아간다.
어떻게 보면 참 미련한 제자들 같고, 변한 것 없는 베드로의 모습인 것 같은데,
나는 이 모습이 부럽다, 베드로의 저 모습이 내 모습이면 좋겠다.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결정했지만, 참 많은 순간 실패한다.
그래도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처음 처럼 불러 주시기를 사모한다.
그러면 나는 어제보다 한 걸음 더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고,
지난 시간 보다 더 예수님을 닮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늘 주님이 쓰시겠다는 확실한 부르심에 목마르다.
이 사순절 기간 사모하는 주님이 여전히 찾아와서 내 믿음을 도우실 것을 믿는다. -
- 느헤미야강 20-03-17
- 요21;1-14 묵상
1.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최후 사역을 했고 그 사명을 마쳤다.
예루살렘은 유대 나라의 수도이며 거룩한 성전이 있어 민족의 성지이다.
예수님이 그런곳에서 사명을 마치셨으니
제자들도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가야 마땅하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을 갈릴리로 제자들을 보내셨다.
가난하고, 사람들도 별로 없고, 천대를 받던 땅 갈릴리...
이사야 선지자도 그곳을 가리켜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렀으며
사망의 땅, 그늘이라고 했다.
그러면 주님은 제자들을 왜 갈릴리로 보내셨을까?
첫 번째 드는 생각은 이렇다.
갈릴리는 조롱과 경멸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환영받지 못하고 천대와 구발을 받는 곳이다.
제자들이 앞으로 감당하게 될 사역이 역시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이다.
갈릴리는 제자들 대부분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다.
하나님의 복음은 장기적으로 열방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만
그 복음의 시작점은 내가 서 있는 삶의 자리,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전해지고 나누어져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2.
예수님은 특별히 혈기 있고, 자기 주장이 강하고,
성질이 불 같은 사람 베드로를 위하여 특별무대를 준비하셨다.
숯불 트라우마 극복 프로젝트!
숯불앞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
대제사장 집에 있던 것도 숯불이었다.
숯불만 보아도 덜컥 겁이 났을 것 같다.
그 숯불이 지금 해변에 피워져 있다.
그에게는 숯불 트라우마가 있었을 수도 있다.
주님은 베드로가 가졌던 트라우마를 이렇게 극복하게 하시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새로운 가능성을 주시려는 것이지 싶다.
이후의 사도행전의 베드로는 성공적인 사역자 그리고 능력의 사도이다.
주님의 숯불 이벤트로 트라우마가 치유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자로서의 능력이 회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숯불 트라우마 프로젝트때문이 아닐까 싶다.
3
갈릴리는 염해보다는 위 쪽에 있지만
삶의 환경은 낮은 자리이다.
일상의 삶속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힘을빼야
주님의 능력이 드러난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하나님께서 하셔야 하는 것을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해서 배웠다.
내가 가져야 할 마음은 낮은 마음이다.
거기서부터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낮은 마음의 출발점은 내가 서 있는 일상의 자리이다.
그리고 어떤 형태의 트라우마도 극복하고 치유케 하신 후에야
쓰임받게 하시는 주님이시니
주님앞에 치유받아야 할 것 남김없이 드러내 보여야 한다.
감추는게 능사는 아님을 깨닫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