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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수)_사명 감당의 필수 요건은 예수님 사랑뿐입니다.(요21:15-25)

  • seanho
  •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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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8. () 생명의 삶

 

 

사명 감당의 필수 요건은 예수님 사랑뿐입니다.

요한복음21:15-25

 

 

오늘의 찬송

(314 511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1.본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1:15~17

 

15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제자들의 서로 다른 사명 21:18~25

 

18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4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2. 본문해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1:15-17

 

비록 예수님을 배반한 적이 있을지라도 그 죄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사명자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러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기에 그분의 제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세 번 하셔서 베드로가 긍정의 대답을 세 번 하게 하십니다.

이 과정을 통해 베드로를 과거의 실패로부터 회복시키시고 그의 지위를 복원시켜 주십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마침내 목양 사명자가 됩니다. 이것은 교황이나 사도로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누구나 사명을 받게 되며,

그 사명이 무엇이든 사랑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

왜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질문하셨을까요?

내 능력, 재물, 경험 등 그 무엇부도 사랑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지 돌아보세요.

 

제자들의 서로 다른 사명 21:18-25

 

어떤 사명이 더 좋은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기 교회 안에서 베드로의 순교와 요한의 장수 중 무엇이 더 좋은 것인지 논쟁이 있기도 했습니다.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21-22)은 각자 자신이 받은 사명을 귀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이 받은 사명과 비교하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8-19절에 암시된 것과 초기 교회 문서들에 따르면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아무나 감당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사명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오래 살면서 자신이 듣고 본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을

오랫동안 전하는 것도 귀한 사명입니다. 각자가 주님께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되

남이 받은 사명을 질투하거나 무시하면 안 됩니다.  

-

베드로는 요한이 훗날 어떻게 될지 왜 궁금했을까요? 나의 사명관은 무엇인지,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어떤 수정이 필요한지 정리해 보세요.

    • seanho 20-03-18
      묵상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 이런 고민을 하는 것 같다.
      '어떻게 주를 위해서 살까, 무엇으로 쓰임받을까?'
      실제로 청소년 사역을 할때 많은 청소년들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이 같은 고민을 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멋지게 준비해서 하나님께 쓰임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본 경험이 있다.
      당시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구체적인 모습들은 어떤 학교에 진학하고,
      졸업후에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어서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끼치는 모습이었다.
      신앙의 긍정적인 면이고, 좋은 믿음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조금 아쉬웠다.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가 되어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말씀을 보면서 늘 그 런생각이 든다.
      무엇가가 되어 드리기 보다는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는 존재로서 주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꿈꾸면 좋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다시 제자로 부르셔서 사명을 맡겨 주실 때 주님이 베드로에게 확인하는 것은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지 '였다. 그리고 그 확인을 마치고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라는 말에는 따라오기만 하면, '뒤는 내가 봐준다, 책임지겠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어떤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야, 어떤 위치에 올라서야, 재능이 있어야만 주님께 영광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주님이 나의 전부가 될 만큼 사랑하면 예수님을 따라 사는 제자의 자리로 부르시고, 그 자리를 감당할 능력도 주실줄 믿는다.

      '나는 주님을 내 전부로 사랑함' 이라는 한 줄이 주님 앞에 드리는 나의 이력서의 전부가 되기를 소망한다.
    • 느헤미야강 20-03-18
      20200318 말씀묵상

      너도 한때는 그와 같았으니라 <요 21;15-25>

      1
      조반 후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아직 숯불은 타고 있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숯불 트라우마 같은게 있는 베드로가
      하필이면 그런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을 거다.
      성경은 베드로에 대해 ‘근심하여 대답했다’고 했다.

      그렇게 세 번 질문을 하신 것은 그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한 확증 없이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을
      베드로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못난 제자 베드로가 아니라
      빛나는 사도 베드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후 제자들은 모두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주님 사랑에 대한 확신 없이는
      나는 그 어떤 것도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된다.

      인간을 향한 주님의 사랑은 끊을 수 없는 사랑이다.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랑이요,
      우주를 뚫고 들어오는 집요한 사랑이다.

      베드로를 향한 삼세번은 그 사랑에 대한 확증이지 싶다.
      주님은 그렇게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내가 베드로처럼 부인해도, 제자들처럼 실수해도,
      여전히 계속 실망시켜도, 상관없이
      주님은 그 사랑의 줄을 놓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으로 읽혀진다.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로 나를 인도하시기 위해서이다.
      일방적으로 쏟아 주시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는 사랑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이 본문을 읽을때마다 가슴이 져며온다.
      그 메시지를 읽고 들은 너는 나를 사랑하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
      일도, 사명도, 목회도 다 사랑으로 하라신다.
      왜 주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물었는지
      평생 잊지 않도록 하신다.
      너도 한때는 그와 같았으니...

      ‘요한복음’
      복음서의 맨 마지막 책,
      예루살렘 멸망 후에도 사랑하는 제자가 살아 남아서 기록한 책,
      나는 이 책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본문 마지막 장에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 말씀을 하신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띄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띄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베드로의 인생은 없어지고 대신 주님의 삶을 산다는 뜻이다.
      죽어야 새 생명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나의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신다.
      자아는 죽어지고, 비워지고, 깨어져야 그리스도가 살수 있다.
      성도의 삶은 내 뜻대로 주님을 당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끌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방향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서는 결코 걸어갈 수 없는 길이다.
      베드로는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내게도 영광을 돌리기를 원신다.
      나도 분명 제자이니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