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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화) 주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면 부정적인 말을 믿습니다. (신1:19-33)
- seanho
- 2020-03-24
- 493 회
- 3 건
2020.03.24. (화) 생명의 삶
주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면 부정적인 말을 믿습니다.
신명기1:19-33
오늘의 찬송
(새 546 통 399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가나안 땅 정탐 1:19~25
19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을 떠나 너희가 보았던
그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의 산지 길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때에
20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21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22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23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너희 중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
24그들이 돌이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25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정탐 결과에 대한 부정적 보고 1:26~33
26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27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28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29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가나안 땅 정탐 1:19-25
새로운 땅을 향해 나아갈 때 필요한 것은 현장 답사뿐 아니라 그 땅을 향한 믿음의 시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을 떠나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아모리 산지로 통하는 가나안의 남쪽 경계 지역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가나안의 도로망과 성읍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선발해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정탐은 불신행위가 아니라 전쟁의 승리를 위한 정당한 준비로도 볼 수 있습니다.
땅을 둘러본 정탐꾼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땅이‘좋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거대한 과일 꾸러미는 하나님의 약속이 사실임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땅을 믿음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이 보이신 증거를 믿고 담대히 전진하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은 오직 믿음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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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에서 가져온 것은 무엇이며, 이는 무엇을 확증하나요?
하나님이 그분 약속을 증거로 확고히 해 주실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정탐 결과에 대한 부정적 보고 1:26-33
부정적인 말은 공동체에 악한 영향을 끼칩니다.
가나안 땅이 좋다고 한 정탐꾼들 중 열 명은 곧 부정적으로 변했습니다.
각 지파에서 선발된 요원들이었음에도 그들은 견고한 요새와
장대한 사람들에게 압도당해 약속의 땅을 악평했습니다(민13:32-33).
부정적인 말을 들은 백성은 낙심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을 쏟아 냈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기적을 기억하고 광야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자고 호소했지만
비관론을 잠재우지 못했습니다. 부정적인 말, 불신의 말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악입니다.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약속을 믿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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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비관론이 팽배할 때 하나님의 관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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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anho 20-03-24
- 묵상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의 정탐꾼 열 두 명중에 열명은 정탐의 목적을 착각한것 같다.
21절 말씀을 보면 '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셨다.
일어나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이 땅을 차지하라.
두려워 말라. 망설이지 말라.'(우리말성경) '라는 말을 듣고 그들은 정탐을 떠난다.
21절에서 하나님이 하신 명령의 동사들을 정리해 보면, 정탐꾼들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보라! 일어나라! 차지하라! 두려워 말라! 망성이지 말라!'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확인하고, 일어나 가서 차지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
앞에 두가지 명령은 잘 수행했다. 보는것 그리고 일어나서 가는것 가까지는...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만 붙잡고 순종하면 되는 간단한 가나안 정복의 일에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기 시작한다.
이미 하나님이 넘겨 주신 땅인데 자신의 생각을 첨가 하니까 그 땅은
정복할 수 없는 무시무시하고, 강력한 땅으로 그들에게 다가온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그리고 그들의 보고를 들 은 수많은 무리들은
자신의 생각들이 눈을 가려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것은 자신들의 관점으로 바라봐서
주신 것도 얻지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얻게 된다.
그런데 이 모습이 내가 자주 겪는 모습인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때는 평안하고, 확신이 있고,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다. 그런데 세상에서 문제를 만나거나, 조그만 불평거리가
다가올 때는 말씀을 잊고 평안함을 잃어 버린다.
사역에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 같으나,
삶의 여러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 나의 관점으로 바라보느라
감사와, 확신과, 기쁨을 잃는 순간이 많은 것 같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내 삶의 전 영역을 다스리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관점이 예배의 자리, 사역의 자리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도 그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만나는 삶의 순간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
- 느헤미야강 20-03-24
- 정탐꾼을 보내자는 것부터 예견된 참사이다.
하나님이 들어가라고 한 땅이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께서 또 행할 일이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백성들이 잘 곳을 미리 앞서가서 찜 해놓는 하나님이셨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보다 힘이 세고 강하다.
성벽은 하늘까지 솟아 있다.
우리는 거기서 거인들을 보았다.
급기야 그들은 불평을 지나 원망을 한다.
굳이 정탐하여 보았으면 이런땅을 우리를 위해
준비 해 놓으신거야. 할렐루야!
그랬어야 한다.
말을 안 듣는 다는 것은 그 사람을 무시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그 사람을 믿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탐꾼의 핑계로 대의명분을 찾았다.
그리고 불순종했다.
그들의 내면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두려움은 믿음을 빼앗아 간다.
과거에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케 한다.
보이는 장애물이 안 보이는 하나님보다 더 커져
하나님을 거역하게 한다.
결국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여기서 믿음과 두려움의 함수관계가 정립될 수 있다.
믿음과 두려움은 반비례이다.
믿음이 커지면 두려움은 작아지지만,
믿음이 약하면 두려움은 커진다.
두려울수록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그 열매는 불순종으로 나타난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많다.
그 두려움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불신의 관계로 인도한다.
주님을 무시하게 만들고 조롱하게 하는 앞잡이이다.
환경의 압박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으려면
지나온 은혜, 과거에 행하신 능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가신 하나님.
그분이 나보다 먼저 가셔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이다.
두려우면 두려울수록 더욱더 주님을 굳게 믿는 일이다.
비행기는 날기 전에 가장 빨리 달린다.
그래야 무난히 창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가데스바네아가 바로 그 지점이다.
이스라엘은 바로 그곳에서 넘어져 도약에 실패하고 말았다.
오늘 작금의 문제가 우리의 가데스바네아 아닐까 싶다.
이때야 말로 오직 믿음으로 계획된 복,
약속된 복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 디모데준 20-03-25
- 28절"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낙자손과 그들의 성읍들을 볼때 고개를 위로 젖혀서 보았을 것이다.
고개를 젖혀서 위를 바라는 보았지만, 그들의 초점은 잘못된 곳을 향하여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문제만 보았지, 그 문제보다 더 높고 큰 하늘은 보지를 못했다.
때론 문제가 너무 큰 나머지 그것이 하늘을 잠시 가릴수도 있지만,
거기서 좌절하고 무너지는것이 아닌,
고개를 돌려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내가 되길 다짐한다.
29~33절까지 읽다보니, 시편 23편이 생각이 떠올랐다.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좋으신 분.
우리가 가는 목적지가 좋은 곳이라고, 가는 길목도 좋을거라 착각 할때가 많은 것 같다.
때론 가는 길이 힘들지라도,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닌,
내 앞에 주님이 먼저 가고 계신다는걸 잊지 않고,
그 주님을 바라보며 그 길들을 잘 헤쳐 나아 갈 수 있는 내가 되길 소원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삶을 돌아보며, 여기까지 올수 있었던 이유는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또는 은혜라 많이 고백 하는걸 본다.
그 고백이 가능한 이유는..
오늘 31절 말씀처럼 참 좋으신 아버지가 계셔서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감사드린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