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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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고 싶다_요6;16-21

  • 느헤미야강
  • 20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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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도를 본받고 싶다

6;16-21

 

주님은 물 위를 걸어 제자들을 만났다.

 

요한복음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삼으시려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먼저 갈릴리 건너편으로 보내시고

예수님은 산으로 올라셨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보면 기도하기 위해서라고 나온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서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조금은 생뚱맞지만 이런 묵상을 해본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 기도하셨다.

바쁠수록 기도하셨고, 사역시작전에, 사역후에도 늘 기도하셨다.

군중들의 거센 기대앞에서 늘 자신의 사명을 점검하려면

아버지 하나님과의 깊은 기도는 필수였다.

그렇게 너무 기도에 열중하신 나머지 제자들과 약속한

배 시간을 놓쳤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물 위를 걸으셨던 것은 아닐까...

 

요한복음의 표적이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능력, 표적을 통해서 그 분이 누구이신가를

알리시려는 것이 근본 목적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부터 여러 사건을 통해서 보이셨다.

이것은 당연한 이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치지 말아랴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셨다는 것이다.

배 시간을 놓칠 정도로 기도에 집중하셨던 것은 아닐까.

 

산에서 주님은 하나님과 많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앞으로의 사역과 그 방향에 대해서 많은 의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도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주님의 가장 어려운 기도가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로,

주님께서 같은 기도제목으로 세 번이나 기도하셨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식으로 응답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본인의 의지와 결정으로 하나님의 뜻인 십자가를 지셨다.

하나님께서 그때 응답하셨다면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수 없다.

 

그렇게 본다면 무 응답은 하나님의 가장 정확한 응답이다.

내게도 그럴 때가 참 많다.

십 년을 기도해도 특별한 응답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십년을 더 기도해야 하고,

더 나아가 또 십 년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예수님처럼 무응답도 응답이라면...

그런 모습을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께서 지켜 보시지 않을 리 없고

그 기간을 결코 무시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로든지 응답하심을 믿는다.

성령의 감동과 감화로 그리고 말씀의 깨달음과 통찰로

또한 환경과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분의 음성을 들려줄 것을 믿는다.

 

본문의 본질과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은 있지만

제자들이 꽤 오랜시간동안 배 안에서 고생한 만큼

주님은 그 시간을 기도하셨다는게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정도쯤이면 아버지 하나님과 소통이 되었고

제자들에게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고 여겼을터.

 

오늘 내게 주시는 도전이 있다.

제자들이 고생하는 긴 시간까지 기도할 만큼

나의 기도시간에 관해서이다.

나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긴 시간을 기도하기가 어쩨 였던가?

그리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아니라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호흡하듯이 기도하는 것이 기뻐서

오랜 시간 함께 이야기하듯 그런 기도를 생각해 본다.

그런 기도의 사람의 필요를 결코 외면하시지 않으시리라 여긴다.

    • Coramdeo 20-01-25
      부끄럽지만 주님과 깊은교제가운데 들어간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는 엎드리면 주님께 뭐라 기도해야할지 모를때가 있고 한편으로는 주님께 너무 송구하다
      다윗이 밧세바와 범죄한후 회개하며 지은시편51편을 생각하며 주님께 간구한다
      나를 주님앞에서 쫓아내지마시며 주의 성령을 거두지마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이제는 나의 기도영역이 하나님나라를 세우는데로 넓혀지기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