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28(금) 주님의 친구조건_요15;9-17

  • 느헤미야강
  • 2020-02-29
  • 445 회
  • 0 건

오늘 본문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의 결론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내용이다.

주님께서 주신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인데,

그 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큰 사랑이다.

그것을 위해 주님께서는 이제 우리를 종이 아닌 친구로 부르신다.

 

1.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말씀하시는 데로 하면 친구 사이가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과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나?

구약을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을 향하여 친구라고 부르기도 했다.

출애굽기와 이사야서에서 아브라함과 모세를 그렇게 부르셨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그 관계는 쌍방적 관계가 아니고 일방적이었다.

하나님이 오케이 하셔도 아브라함과 모세가 하나님을 친구로 부르지 못했다.

제자들도 예수님에게 친구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런데 명하는 대로 행하면 친구로 여기신다 한다.

계명을 지키는 것을 얼마나 강조하고 싶으셨으면...

계명을 준행하는 사람을 얼마나 보고 싶으셨으면...

이 말씀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머리에는 있는데 가슴으로 내려오지 않는 말씀이 얼마나 많는가?

내 안에,

어디 내 안에서만 그런가?

 

2.

이어 주님은 친구와 종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신다.

종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순종해야 한다.

굳이 알려 줄 필요도 없다.

하지만 친구는 주인, 친구의 뜻을 알고 순종한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셨다.

제자들을 종으로 여기지 않고 친구로 보았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친구 사이이다.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그 뜻을 아니 내 친구가 되는게 맞다는 말씀이다.

나는 친구인가? 친구되려는 마음은 있는가?

 

3.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제자들이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제자들을 택하셨다.

생각할수록 당혹스럽고 감사하다.

당시 사회습관으로는 제자들이 배울 스승을 선택했다.

스승은 제자로 받아들일지만 결정하면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셨다.

택함 받은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은혜의 말씀이리라.

그래도 이해 안되는 것은

누가 뭐래도 내 제자는 똑똑하고 잘나고 근사한 사람이 좋다.

제자는 내가 스승을 택하는게 아니라 스승이 택하는게 맞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시 사회습관도 나의 상식도 뛰어 넘으셨다.

나를 택하셨다.

은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데 깊은 고민은 있다.

은혜는 아들을 내어주신 고통과 절망의 십자가

그 지켜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죄와 속죄, 그리고 죽음이라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감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까지 보여주신 그 것을

은혜속에 다 집어넣어서 은혜니까 라고 말하는 내가 아닌가 싶어서이다.

누군가가 은혜를 말할때 은혜속에 녹아져 있는 아픔을 잊지 않기를 

내 평생의 삶속에서 다지게 하신다.


그리고 .............음


4.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가 내게 기끔이 충만케 하려는 것이라 하신다.

나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사랑하라.

가족들, 교회 공동체 식구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어디 그뿐일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다.

해코지하는 사람, 손해를 끼치는 얄미운 인간들에 이르기까지.

 

그래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믿음의 식구들 가운데 아프고 고통가운데 있는 분들이 많다.

자존심 때문에 아파하고, 상한 마음 때문에

내 놓아 말할 수 없는 사랑하는 이들안에서의 아픔과 눈물.

마음 준비를 오랫동안 주어진 현실앞에 목놓아 울수도 없는 이들.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진 사람들도 있다.

상처가 깊은 사람도 있고, 외롭거나 삶에 지친 사람들도 있다.

여건도 좋지 않지만 도울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사랑이겠지.

시간을 들이고 정성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계명과 연결되어 있으니

그렇게 사는 사람을 주님은 친구라 하신다.

당연한 데 주님과 친구되기 참 어렵다.

주님 말씀이 생각난다.

너희가 아직 죽기까지는 순종해보지 않았다고

죽기까지는 사랑해본적 없지 않냐고...

사랑하면 할 수 있다고 하신다.

주님 사랑의 씨가 내게 심겨져 있기 때문이다.

궁색한 변명이 필요 없게 하신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친구는 되고 싶은데 하기를 싫고, 어렵고, 힘들고...

 

하나님의 아들을,

만 왕의 왕을 친구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은혜인데 사뭇 가슴 먹먹해 지는 말씀 묵상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