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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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수) 약4장_내 안에 있는 죄의 본성

  • 느헤미야강
  • 20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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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_내 안에 있는 죄의 본성

 

다음으로 야보고 사도는 분쟁의 문제를 다룹니다.

모든 분쟁은 욕심”(1)에서 나옵니다.

욕심이 분쟁으로 이어지고 때로는 살인으로 이어집니다(2).

믿는 사람은 욕심을 부리기를 단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편을 택해야 합니다.

다만, 구하는 목적이 쾌락에 있으면 안됩니다(3).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쾌락을 위해 구할 때면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여러 가지 쾌락을 구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성적 쾌락에 제일 취약합니다.

쾌락을 위해 성을 오용하는 것이 간음”(4)입니다.

간음은 세상과 벗하는 것이고, 세상과 벗하는 것은 하나님을 등지는 일입니다.

여기서 세상은 죄를 의미합니다.

세상 즉 죄의 친구가 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질투하실 정도로 사랑하십니다(5).

또한 하나님은 당신을 택한 사람들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6).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고, 악마를 물리쳐야 합니다”(7).

그럴 때 욕심의 올무에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하나님께서도 가까이 오십니다(8).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는 말은 죄를 멀리하고 마음을 순결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성을 생각하고 때로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울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회개하고 주님의 자비를 구하면

주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9-10).

 

사도는 다시 분쟁의 문제로 돌아갑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헐뜯거나 심판하는 것은 율법

즉 주님의 가르침을 헐뜯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믿음의 형제 자매조차 사랑하지 못하고 비방하고 헐뜯는다면,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범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11).

계명을 주신 주님은 또한 심판 하기도 하시는 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이웃은 우리에게 심판 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라고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웃을 심판하는 것은 주님의 자리를 범하는 죄입니다(12).

 

이어서 야고보 사도는 교만에 대해 가르침을 줍니다.

미래의 일을 계획하는 것은 좋습니다만,

마치 미래가 자기의 통제력 안에 있는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14) 때문입니다.

우리는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14)와 같습니다.

그것을 안다면 미래에 대해 말할 때 겸손하게 말해야 합니다(15).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우쭐대고 자랑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16).

그들은 그것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합니다.

그렇기에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된다”(17)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묵상:

우리가 가장 위험해지는 때는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망각할 때입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죄의 본성이 숨어 있습니다.

그 죄의 본성은 때로는 교만으로, 때로는 탐욕으로, 때로는 분쟁으로,

때로는 간음으로, 때로는 자랑으로 그 존재를 드러냅니다.

우리의 마음은 죄 된 본성에 너무도 취약 하기에 자주 유혹에 넘어집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늘 깨어서 죄의 본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유혹하는 사탄보다 크시고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쾌락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겸손히 주님 앞에 고개 숙이고 나의 죄성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성령께서 나를 다스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김성민목사 19-09-1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4:1-3

      정욕과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좋은 방향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정욕과 욕심 때문에 잘못된 인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신앙생활도 때로는 욕심 때문에 망쳐버리는 경우도 있다. 가인은 욕심 때문에 아벨을 시기하였고 동생을 죽였다. 사울왕은 욕심 때문에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을 받았다. 가룟 유다는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았다. 그렇다면 한번 욕심과 정욕에 빠져버리면 영원히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을까? 삼손 사사는 욕심을 부려 힘을 잃고 노예로 붙잡혔다. 그러나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삼손을 마지막에 사용하셨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찾아가 주셨고 예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다시 사용하신 이유는 자신의 죄를 자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기 때문이다. 바라는 것은 이제는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되기를 바란다. 욕심 때문에 무너져가는 나의 모습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상황을 직면하지 않도록 오늘도 깨어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