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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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목) 요일4장_하나님에게 시작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드러나는 것
- 느헤미야강
- 20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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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4장; 하나님에게 시작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드러나는 것
이어서 사도는 ‘영 분별’에 대해 설명합니다(1-6절).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라는 뜻입니다.
거룩한 영이 있다면 부정한 영도 있다는 뜻입니다.
사탄의 수하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활동하는 영들이 부정한 영입니다.
‘영’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 듯,
영은 그 영향력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악한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왜곡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사실
즉 성육신의 사건을 부정합니다(2절).
그 영이 이미 이 세상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그로 인해 “거짓 예언자”(1절, 4절)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의 출현으로 인해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악한 영은 성령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이 성육신의 사건
즉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믿음을 허물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완전하게 표현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낸 이유도 사랑 때문이고(9절)
그 아들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신 이유도 사랑 때문입니다(10절).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되셔서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모두 치르셨습니다.
그 사건을 믿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부딪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을 알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악한 영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원치 않습니다.
여기서 사랑의 위대한 진실이 드러납니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7절)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너무도 흠결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고결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 뿐입니다.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야 하고
또한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11절).
그렇게 사랑을 실천할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깨달아 갑니다(7-8절).
제 아무리 많은 종교 행위를 한다 해도 사랑을 모르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반대로, 진실한 사랑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며,
그 사랑을 통해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됩니다(12절, 16절).
진실한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예수님처럼 살도록 만들어 줍니다(17절).
사랑을 실천함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랑은 마지막 심판대 앞에 담대하게 서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예수께서 이미 자신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으셨음을 믿기에
담대하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됩니다(18절).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 사랑을 형제 자매에게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20-21절).
하나님에게서 받은 사랑은 우리를 통해 우리의 형제 자매에게 흘러 나가야 마땅합니다.
묵상: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16절)는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 혹은 우리가 행하고 있는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말씀은
“당신들이 알고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라는 뜻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화목 제물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까지 우리는 사랑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을 체험할 때에야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믿음의 정도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 주는 지표는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성경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기도를 얼마나 오래 하는가,
찬양을 얼마나 뜨겁게 하는가는 정확한 지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결국 사랑의 실천으로 열매 맺어질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 내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것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 놓습니다.
그리고 참된 사랑이 십자가로부터 나에게로 흘러 들어오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그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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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9-26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장 7-8절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마음을 많이 불편하게 만든다. 생각할수록 밉고, 만날때 마다 속이 뒤집힌다. 그렇게 미워하다 보면 내 자신도 병들어간다. 짜증이 늘어가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예민해진다. 이 모든것은 마음에 미움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반댓말은 미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미워할 이유가 없는데 우리 마음속에 미움이 시작되는 것은 나라는 잘난 자아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렇게 훌륭한 사람인데, 내가 누구인데 하는 프라이드, 자존심이 어쩌면 나를 병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막의 교부들은 혹은 성인이라 추앙받는 사람들은 겸손을 강조한다. 아니 예수님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알 수 있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온갖 고난, 모욕을 당하셨지만 묵묵히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그분이 겸손의 왕이시지 않은가? 그런데 고작 내가 잘났다고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다. 그 누가 나에게 무슨 말과 행동을 한다고 해도 나는 흔들리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화내고 미워함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 보다 미움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것이 백배 천배 더 나은 것이다. 그러니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를 지키게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