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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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수) 딤전1장 감당할 수 없는 은혜

  • 느헤미야강
  • 201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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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1_ 감당할 수 없는 은혜

 

그동안 읽은 바울의 편지들은 한 지역에 있던 교회(가정 교회들)에게 쓰여진 것인 반면,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은 개인에게 쓰여진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 사도가 가장 아낀 동역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를 발탁한 사람도 바울이었습니다(16).

이 편지는 바울의 사역 후반기에 쓰인 것으로서 원로 목회자가

후배 목회자에게 주는 유언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서신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당시 편지 형식을 따라 발신자를 밝히고 또한 수신자를 밝힙니다(1-2).

그런 다음 그가 늘 사용하던 표현을 사용하여 디모데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사도는 마케도니아로 떠날 때에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러 있도록 부탁한 일에 대해 언급합니다(3).

그 이유는 당시에 에베소 교회에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3)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4)를 가지고 복음을 왜곡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가르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쓸데 없는 변론을 일으킬”(4) 뿐이었습니다.

반면,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려는”(5) 것입니다.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런 열매를 맺기는커녕

논쟁과 분란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6).

그들은 율법교사로 자처하지만 실은 율법의 정신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본래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죄악을 알게 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목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8-9).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왜곡하여 단순한 논쟁 거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어서 바울 사도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말을 이어 갑니다.

그가 복음 전파의 임무를 맡은 것(11)은 그에게 어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그를 신실하게”(12) 여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과거에 교회를 박해 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셔서 그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14).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 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는데,

그 자신은 죄인 중에서도 최악의 죄인입니다.

그러한 자신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끝없이 참아 주심의 한 사례를 먼저 자신에게 보여 주심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16).

누군가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의 분량을 생각하며

나같은 죄인이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때

, 바울같은 사람도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면

나도 그 은혜를 입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지점에서 사도는 하나님께 찬양을 올립니다(17).

자신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그리고 자신을 통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루어 오신 역사를 생각할 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는 다시금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과거에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 대해 예언을 했었습니다(18).

그 예언의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디모데가 장차 어려운 상황을 만날 것을 예언 하면서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라”(18-19)고 권면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려움을 만나 선한 양심을 버리고,

그 신앙 생활에 파선을 당하는”(19)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사도는 그 예로써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듭니다.

사탄에게 넘겨 주었다”(20)는 말은 믿음의 공동체로부터 추방 했다는 뜻입니다.

사도는 디모데가 그들처럼 실패하지 않도록 단단히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바울 사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 다해 찬양하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모든 일이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은혜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된 것이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는 과거에 복음과 교회를 박해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처형하는 일에 앞장 섰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죄인의 우두머리”(15)라고 불렀습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그는 그런 일을 맡을 정도로 신실한 사람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신실하게 여기셔서”(12) 그 영예로운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그 은혜에 감복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복음을 전해 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로서는 도무지 받을 자격이 없는데

오직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나에게 구원이 주어졌고 또한 직분이 주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능력으로 헌신합니다.

    • 김성민목사 19-08-07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딤전1:3

      바울이 디모데교회에 다른교훈을 가르치지 말라고 권면한다. 여기서 다른복음은 율법이다. 율법이 나쁜것은 아니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지 사람에게는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남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디모데교회 성도들은 율법의 가르침에 현혹되어 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 수 있다. 왜 율법에 넘어갔을까? 생각해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 더욱더 경건한 삶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마음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런데 율법이 철저히 죄의 모습으로 부터 자신을 단속하는 역할을 해준다고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것도 그런것이 작은 것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행동에 단서를 붙여 놓았으니 그럴듯 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경건해 보이고 구별되 보이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을 따라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는 성도들의 마음을 훔친것이다. 하지만 그 율법의 모습은 선하나 그 중심마저 선한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선하게 보시는 것은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그 중심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하지만 율법을 사랑하려 그 모습만 쫓는다면 언젠가 중심에 예수님이 아니라 율법이 차지할 것이다. 그러니 항상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제일 중요한 믿음의 원칙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