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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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금) 갈1장_내게 있는 예수님 만난 이야기

  • 느헤미야강
  • 20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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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마그나카르타라고 알려진 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에서 복음을 전했던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이고니온과 더베 지역이 바로 이 편지의 수신처인 남부 갈라디아 지방입니다.

사도가 복음을 전하고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거짓 교사들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복음에 할례와 율법을 더함으로써 사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변질된 것을 보고

이를 바로잡고자 이 서신을 썼습니다.

이런 점에서 갈라디아서는 매우 논쟁적이고 더욱 복음의 진리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사도는 무엇보다 자신의 사도됨의 기원을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라고 밝힘으로써 이제 자신이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복음의 기원이 바로 하나님임을 보여주려고 합니다(1).

사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복음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는 목적을 가지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신 사건이라고 정의합니다(4).

이것은 우리 밖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아무도 변개할 수 없는 일어난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입니다.

믿는 자의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성취된 일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는 자가 더해야 할 조건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갈라디아 교회를 어지럽히는 거짓 교사들이 하는 일은

바로 그 복음을 거짓 복음으로 바꾸려는 것입니다.

교회의 대적은 바로 교회 안에 있는 거짓 복음입니다.

이런 이유로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사도는 쓰고 있는 것입니다(8).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은 복음의 진리이며

모든 인간관계를 결정하는 요소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사도는 갈라디아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

그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동기로 행하기를 원했고

복음의 진리에 서기를 원했습니다(10).

 

사도는 계속해서 자기가 전한 참 복음의 출처를 밝힙니다.

그것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도, 누구에게서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11~12).

사도는 여기서 비교적 상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복음을 알기 전, 회심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설명합니다.

회심 이전, 사도는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고 그 주어는 자기 자신이었습니다(13~14).

그러나’(15) 회심 이후 자신의 인생의 주어는 하나님이십니다(15~16).

바울의 회심은 하나님께서 모태로부터 자신을 택하시고

은혜로 부르셨기 때문에 된 일입니다(15).

회심은 내 결정과 선택과 영접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를 자기에게 계시하셨습니다(16).

계시란 말은 100% 계시를 주신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 복음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는 회심 후에 예루살렘에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서 배워볼 양으로

그곳을 방문하지 않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을 지냈다고 말합니다(17).

이로써 사도는 이 복음이 누구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직접 주신 계시임을 말합니다.

그는 아라비아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3년간 직접 그 복음을 배웠습니다.

그 후 3년이 지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어 거기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났는데,

이 만남도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받은 복음의 내용을 조사하고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분명히 합니다(18).

이것이 여기 심방이란 헬라어 단어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사도가 복음에 대해서 이처럼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고안해낸 것도, 의논해서 만들어낸 계획도,

누구에게서 그가 배운 것도 아닙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객관적으로 일어난 일이며,

하나님이 주신 계시였기에 그것은 인간이 고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양보할 수 없었고,

거짓 복음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을 보고 앉아있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사도가 인간적 차원의 고려들을 할 수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하나님의 복음 앞에서 부질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마치 모세가 금송아지를 섬기는 백성들 앞에서 두 돌판을 던져 깨뜨리고,

그날에 백성 삼천 명을 죽인 것과 같은 마음으로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를 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복음이 흐려지고, 변질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사도의 이 자세처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양보하십시오.

그러나 복음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마십시오.

 

묵상:

하나님의 살아 계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는 변화된 한 사람의 인생입니다.

바울의 인생 여정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고는 그의 인생이 이토록 분명하게,

이토록 대조적으로 변화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은 인생의 여정과 궤도를 이렇듯 심하게 바꾸어 놓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인생에 만들어 놓으신 변화를 돌아 봅니다.

내 인생 여정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할 만한 사건이 있었는지 돌아봅니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예수 만난 이야기가 내 안에 생겨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