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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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월) 고전11장_예배와 성찬, 은혜의 수단

  • 느헤미야강
  •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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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서두에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을 본 받으라고 말합니다(1).

이것은 문맥상 10장의 결론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고 이웃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는

자신을 본 받으라는 뜻입니다.

 

112절에서부터 14장까지에서 바울은 예배에 관련된 세 가지 문제를 다룹니다.

첫 번째는 예배에서의 질서에 관한 것이고(2-16),

두 번째는 성만찬에 관한 것이며(17-34),

마지막은 영적 은사에 관한 것입니다(12-14).

이것들도 역시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에게 적어 보낸”(7:1) 문제들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가르쳐준 전통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습니다(2).

그것을 칭찬하면서 바울은 또한 그들이 다른 부분에서도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3절에서 반복되어 사용된 머리라는 표현은 권위혹은 리더를 상징합니다.

로마의 남성들은 그들의 신에게 제사 드릴 때 머리에 무언가를 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남성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4).

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머리에 무엇을 쓰라고 말합니다(5-6).

당시에는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머리에 무언가를 쓰는 것이 단정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문화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구별성을 지키기 위한 지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다른 문화권에서 이 지침을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남성과 여성의 구별됨을 강조하는 한편

믿음 안에서 동등하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정작 바울 사도가 말하고 싶었던 말씀은 11-12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과 마찬가지로

(아담에게서 하와가 지음 받은 것을 말합니다),

남자도 여자의 몸에서 났습니다”(12)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구별됨은 차별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는 한 인간으로서 주님 앞에서 동등합니다.

다만, 구별됨을 알고 또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17절부터 34절까지 성만찬 오용의 문제를 다룹니다.

먼저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지키는 성만찬에 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합니다(17-20).

그들은 성만찬을 위해 연회를 열었지만 그것은 당시 그리스 로마에서 행하던

저녁 파티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드러내기 위함이었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었습니다(21-22).

그래서 바울은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을 기억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23-26).

먹고 마시자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땅히 감사와 경외감으로 임해야 하고

합당하지 않게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죄입니다(27).

스스로 살펴서 조심하고,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행해야 합니다(28-34).

 

묵상:

존 웨슬리는 예배와 성찬을 가리켜서 은혜의 수단’(Means of Grace)이라고 불렀습니다.

은혜의 수단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통로라는 뜻입니다.

성경 읽기와 기도, 금식, 성도의 교제 등도 모두 은혜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들을 대할 때 우리는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바울은 예배 중에 가장 알맞는 태도와 몸짓으로 임할 것을 요청합니다.

또한 성찬을 나눌 때에도 그 의미에 가장 적합한 마음을 가지도록 힘쓰라고 말합니다.

그래야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매일의 말씀 묵상이 형식이 되지 않기를!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그리고 그런 태도로 예배와 성찬에 임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 김성민목사 19-06-18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

      은혜의 거룩한 수단은 세례와 성만찬이다.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된다. 당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받고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셨듯이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성만찬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과 나누신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고 말씀하신 나를 기억하고 기념하라는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시고 ?기신 살과 피를 의미하며,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시다는 것을 성만찬을 행할 때 마다 우리에게 은혜로 임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면 죄를 회개하고 은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다시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해야 한다. 바라는 것은 성만찬을 행할 때마다 예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되기를, 그리고 나의 삶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하기를 바란다.
    • 이형원전도사 19-06-19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라고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다.
      더불어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을 본 받으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본다.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고 있다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교만해 보일 수 있는 이러한 이야기를 자신있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 삶을 따라가기 위한 노력은 우리 삶 가운데 항상 있어야 할 것이다.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라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일이기에 더욱 최선을 다해
      그 길을 가려고 할 때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 삶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며 칭찬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한 삶을 살아가셨던 예수님의삶을 보면서
      또한 자신의 믿음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했던 열망이
      가득했던 바울의 삶을 보면서 내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갈 때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보이셨던 그 모습 그리고 오늘 바울이 자신이 예수님을 닮은 것처럼
      자신을 닮으라고 이야기하며 살아갔던 그 모습 처럼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