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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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월) 고후4장_겉사람, 속사람
- 느헤미야강
- 2019-06-24
- 5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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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4장_겉사람, 속사람
앞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써 새 언약의 일꾼이 되었음을 밝혔습니다.
그렇기에 새 언약의 일꾼으로 일하는 중에
오해와 모함과 비난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1절).
“부끄러워서 드러내지 못할 일들”(2절) 때문에 비판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간교하게 행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을만큼
깨끗하고 거룩하게 살기 위해 힘써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신”(4절)이 그들의 마음의 눈을 가려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6절)을 이미 주셨습니다.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은 그 빛을 이미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보물을 담은 질그릇”이라는 비유를 사용합니다.
인간 존재는 질그릇처럼 가치 없고 깨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존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비쳤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영광을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도 주셨습니다.
그 복음은 구원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사람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입니다(7절).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믿는 이의 삶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질그릇같은 우리 존재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영예이며 또한 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고난과 환난과 박해가 있어도 움츠러들지 않고(8절)
낙심하지 않으며(8절) 버림받지 않으며(9절) 망하지 않습니다(9절).
외적으로는 손상을 입을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질그릇으로만 산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만,
이제는 더 이상 질그릇이 아니라 “보물 그릇”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니는 것”(10절)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10절)입니다.
즉 자신이 당하는 고난은 예수님이 당한 고난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고난 중에 그와 함께 하셔서 당신이 살아 계심을 증거하십니다(11절).
그리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이 전해집니다(12절).
그 옛날 시편 저자가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 고백한 것처럼,
바울도 역시 고난 중에 믿음에 근거하여 증언합니다(13절).
그의 믿음은 “주 예수를 살리신 분이 예수와 함께 우리도 살리시고,
여러분과 함께 세워 주시리라는 것”(14절)에 대한 믿음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믿음 안에서 모든 것을 견디며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서,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15절).
그렇기에 바울 사도는 낙심하지 않습니다(16절).
“겉사람” 즉 질그릇 같은 육신은 낡아가지만 “속사람”
즉 하나님의 영광을 빛을 받은 영혼은 날로 새로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당했고 또한 당하고 있는 고난을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17절)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가 당한 고난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또한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17절)을 믿고
또한 소망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이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것만이 진실로 영원한 것입니다(18절).
묵상:
바울 사도는 여기서 두 쌍을 대조시켜 보여줍니다.
하나는 “겉사람과 속사람”입니다.
겉사람은 질그릇에 비유 했고 속사람은 보물에 비유 했습니다.
겉사람 혹은 질그릇은 믿음 없는 사람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겉사람이 전부인 사람 혹은 질그릇으로만 사는 사람에게는
육신이 전부이고 물질이 전부입니다.
반면, 겉사람 혹은 질그릇에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치면 보물 그릇이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영원을 믿는 것입니다.
죽은자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려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질그릇으로만 사는 사람에게는 일시적인 것만 의미가 있습니다.
영원한 세계는 그에게 닫혀 있습니다.
반면, 보물을 가진 사람은 영원한 나라를 믿습니다.
이 두 가지(이미 주어진 보화와 약속된 영원)는
믿는 사람을 든든히 지켜주는 반석입니다.
이 반석 위에 든든히 서기를, 오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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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6-25
-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고후4:14
부활신앙을 갖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렵고 어떻게 보면 쉽다. 어렵다고 보는 이유는 머리로 이해하기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은 뜬구름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합리적으로, 확율적으로 죽음은 끝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부활신앙을 갖는 것이 쉬운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 이전에 부활은 정말 기적같은 이야기 일 것이다. 아니면 무언가 잘못되어서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이 없었다면 믿지 못하겠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주셨기게 믿기가 더 쉽다.
결국 부활신앙은 믿음의 차이이다. 내가 무엇을 믿는가가 부활신앙을 결정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오늘도 예수님만 믿으며 나아가길 원한다. -
- 이형원전도사 19-06-26
-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바울과 그의 일행은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주되신 것을 전파하며
또한 예수를 위하여 사역의 대상자들의 종이 된 것을 전파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말씀이 다가옴은 과연 나도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사역을 했는지 혹은 사역을 통해
나를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는지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 일 것이다.
내가 수고하고 얻은 결과가 있다면 혹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헌신한 일이 있다면
그 일들을 사람들이 알아주고 그 일로 인하여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고 새 힘을 얻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보다 더 커지게 될 때 그것은 문제가 된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덧 나를 전하는 자가 되어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기 때문이다.
사역자들은 교회 안에서 크고 작은 일을 주도적으로 해나가기 때문에 이러한 유혹에 더욱
노출되기 쉬운 환경가운데 있다.
이러한 유혹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주님께 쓰임 받는 도구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이러한 일을 맡기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큰
사명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주님을 위한 사역을 하는
사역자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