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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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월) 행전7장_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 느헤미야강
  •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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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드린 앞에 선 스데반은 그 상황을 전도를 위한 계기로 삼습니다.

그는 먼저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 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2-8).

그런데 요셉 때에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이집트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사백 년 동안 생활하게 됩니다(9-16).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미 예언하신 것입니다(6).

사백 년 후에 하나님은 모세를 일으키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계획을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살인자가 되어 이집트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에서 도피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17-29).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 년을 지난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해방시킬 사명을 주십니다(30-35).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어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가나안 땅 건너 편 모압 땅까지 인도합니다(36).

 

스데반이 이렇게 장황하게 아브라함으로부터 모세에 이르는

역사를 서술한 이유는 모세를 통해 주신 예언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는 나를 세우신 것과 같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동족 가운데서 한 예언자를 세워 주실 것이다”(37)라고

예언을 했는데, 그 예언자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그를 제쳐놓고서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어하였습니다”(39).

그래서 그들은 아론을 설득하여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을 섬겼습니다(40-41-43).

그 우상 숭배의 습성이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어져 내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스데반은 광야 시대부터 있었던 증거의 장막”(44)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모세가 만든 것인데,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 옵니다(44-45).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 다윗은 영구적인 성전을 세우려 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셔서 결국 솔로몬이 그 일을 이루게 됩니다(46-47).

이 대목에서 스데반은 그런데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지 않으십니다”(48)라고 말하면서

이사야 661-2절을 증거로 인용합니다.

이것은 대제사장과 성전 귀족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망발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의 장소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그들의 종교 권력의 근거였습니다.

스데반은 그들의 권력의 기초를 위협하는 발언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산헤드린 의원들을 향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당신네 조상들이 한 그대로 당신들도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예언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들은 의인이 올 것을 예언한 사람들을 죽였고,

이제 당신들은 그 의인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

당신들은 천사들이 전하여 준 율법을 받기만 하고,

지키지는 않았습니다”(51-53)라고 책망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그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결국 스데반은 산헤드린 의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것은

광야에서 조상들이 우상을 숭배하던 것의 연장선에 있다는 말을 하려 했던 것입니다.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 온 불신과 반역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그것이 예수님의 죽음에서 절정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산헤드린 의원들의 소동으로 인해 여기서 중단 되었습니다.

그에게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면 회개하고 구원 받으라는 요청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의로 충만해 있던 산헤드린 의원들은

스데반의 고발을 그냥 듣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스데반에게 이를 갈면서 분노했습니다.

그 때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쳐다 보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였”(55)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의원들에게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56) 하고 말했습니다.

의원들은 도저히 참고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스데반은 죄인이요 거짓말쟁이인데,

그가 하나님을 보고 있다고 말하니,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일제히 달려들어 그를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쳐죽입니다(57-58).

산헤드린에게는 사형을 결정하고 집행할 권한이 없었지만,

이번 사건은 감정적인 격발로 인해 우발적으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날아오는 돌에 맞아 죽음을 당하면서 스데반은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59)하고 부르짖고는 무릎 꿇고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60)라고 기도 드립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그대로 한 것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에 참여한 사람들은 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58).

나중에 회심하여 바울이 되는 사울은

기독교 역사의 첫 순교 사건의 핵심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묵상1 :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가장 큰 꿈은 그분처럼 되고

그분처럼 살고 그분처럼 죽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인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과 같이 될 수는 없습니다.

본성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인간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인간의 차원으로 올 수는 있지만,

인간 편에서 하나님의 차원으로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인간으로서의 본성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고 그분처럼 거룩해지고

그분처럼 살다 죽을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적으로는 불행할 수 있지만

가장 행복한 삶이고 또한 가장 복된 삶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 그분처럼 살고

그분처럼 죽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3:10).

그럴 때 그분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주 내가 예수님을 본받은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으십시오라고 권면했습니다.

 

스데반은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예수님처럼 살다가 예수님처럼 죽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하고 그 마음을 따라 살게 합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 굴하지 않았고

예수님이 하신 것과 같은 기도를 드리며 마지막을 맞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기독교 역사상 첫 번째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에 있습니다.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삶은 예수님을 닮은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서입니다.

 

묵상 2:

순교는 초대교회가 성장하면서 치러야 하는 대가였습니다.

교부 터툴리안의 말대로 교회는 순교자들의 피가 씨앗이 되어 자랐습니다.

베드로의 설교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찔러 회개하게 하였다면,

스데반의 설교는 공회원들의 마음을 찔러 분노하게 하였고

마침내는 그를 죽게 하였습니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같은 설교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똑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씀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축복과 구원이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저주와 유기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실로 두려운 일입니다.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아멘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동의한다는 뜻이 아님을 발견합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

주님, 이 말씀이 바로 저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라고 받는 것이지 싶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는 얼마나 큰지..

나는 그런 은혜를 받고 있는지 되새기게 됩니다.

    • 김성민목사 19-04-23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7:59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공포은 죽음일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소 불노불사의 신비를 찾기위해 그의 생야를 받쳤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노화를 막기위해 좋은 약, 음식도 먹고 심지어 성형 수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2000년전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은 무리들이 있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다. 사자에 찢기고, 불에 태움을 당하며 온갖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스데반도 역시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어떻게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이 됬을???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있다.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부활의 첫열매가 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너희도 나와 같이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늘로 올리우실 때 너희의 집을 예비한 후에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신다고 말씀하셨다. 이 모든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죽음을 이기는 굳건한 믿음이 된 것이다.

      오늘 스데반은 예수님께 영혼을 맡긴 후에 깊은
      잠이 들었다. 예수님께 모든것을 맡긴 후에야 모든 것이 끝이 난다는 것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중에 하나이다. 그는 그의 목숨까지 예수님께 맡겼는데 나는 오늘 하루도 예수님께 맡기지 못함이 부끄럽다. 그래 지금 이 순간 만큼 예수님께 나를 맡기오니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순간을 예수님께 드리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 이형원전도사 19-04-24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행7:56)"

      스데반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관없이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말씀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대로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하나님이 우편에 서신 것을 보게 되었다.

      평생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그 마지막이 이와 같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마지막 순간에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내 삶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길 원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주님을 보면서 부끄럽지 않도록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하는 주님의 종으로써의 삶을 살길 원한다.

      때로는 어려움이 있고 핍박이 있을지라도 혹은 세상의 유혹과 시험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그 안에서도 여전히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하길 원한다.
      세상이 크게 다가와 나를 위협하고 때로는 나 자신을 부인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는 믿음이
      나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