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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수) 행전9장_인생 최고의 사건, 회심
- 느헤미야강
- 2019-04-24
- 496 회
- 2 건
본문의 내용에 나오는 사울의 회심 사건은
사도행전 전체의 분수령일 뿐 아니라,
사실상 교회사의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 사울이 회심한 사건은 세계선교역사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는데,
하나님께서는 당시 로마제국 지배하의 헬라 문화권에 익숙한
로마시민권자 사울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세우시고
그 일에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15, 롬 11:13; 갈 2:8; 딤전 2:7).
사울의 회심 사건을 기점으로 해서 13장부터는
사도행전의 중심인물이 베드로에서 바울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죽인 핵심인물 사울은 예루살렘 대박해를 앞장 서서 지휘했고,
그것도 부족해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대제사장의 공문으로 권한을 위임 받아 다메섹으로 향하던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사울이 찾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를 찾으셨고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비추어지는 빛 앞에서 사울은 땅에 엎드러졌고
자기를 부르는 소리 앞에서 사울이 묻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사울이 언제 주님을 핍박했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성경에서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가 핍박한 것은 주님을 믿는 사람들과 교회가 아니었습니까?
여기에서 주님은 주님의 몸인 교회와
당신 자신을 구분하지 않으심을 보게 됩니다.
그 빛으로 눈이 먼 사울은 다메섹에 들어와 사흘간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이 미리 준비시키신 사람 아나니아의 방문을 받습니다.
아나니아가 안수하자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고 힘을 얻고 며칠이 지나자,
그는 즉시 각 회당으로 가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기 시작했는데
그를 당할 유대인이 없었습니다.
사울은 유대인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자
다메섹을 떠나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26).
그러나 실제로 사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전 약 3년간
아라비아 광야에서 시간을 보낸 후에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갈 1:17).
이때 아직도 사울의 회심 사건에 대해서 반신반의하던 사도들에게
그를 소개한 인물은 위로의 아들 바나바였습니다(27).
예루살렘에서도 복음을 전하다가 살해의 위협을 받은 사울은
다시 그의 고향 다소로 가게 되었습니다(30).
사울은 다소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바나바의 초청으로
안디옥 교회로 가서 사역을 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박해로 시작하여 사울의 회심 사건까지의 결과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리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31).
그냥 수가 많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넘치면서 수가 늘어났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성장은 과연 이런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 교회는 이런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단순히 수가 늘어나지 않는다가 아니라,
과연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우리의 삶 속에서 증가하고 있습니까?
계속해서 본문은 그간 복음 사역의 중심인물이 되어온
베드로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베드로는 룻다에서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쳤고
거기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35).
이어 베드로는 욥바의 사랑받는 여제자 다비다(도르가)가 죽자
그를 위해 기도하여 죽은 다비다가 살아나는 표적을 행합니다.
결과 욥바의 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42).
이제 베드로는 또 하나의 교회사상 중요한 한 사건을 위하여
욥바의 피장이 시몬의 집에 머무르고 그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회심은 한 사람의 인생을 설명하는 최고의 사건이고,
그 인생을 이해하는 열쇠다. 사울에게 그랬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믿게 된 것이야말로
내 생애 최고의 변화입니다.
그것은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울의 회심이 회심의 체험이나 방법의 표준으로 제시된 것이라기 보다,
회심 사건의 본질적 성격에 있어 표준을 제시합니다.
사울의 회심과 더불어 베드로의 계속되는 복음전도 사역
(기적은 말씀 사역을 뒷받침하고 따라오는 사역이다)의 결과는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교회의 수가 많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넘치면서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구할 것이 이것입니다.
“주님,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와 함께
구원받는 자들이 더해지는 역사가
이 시대에, 우리들 가운데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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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4-25
-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행 9:5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 그의 믿음의 근거가 되었던 것은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수가 죽었고 다시 살아났다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을 종교 법으로 박해한 것이다. 스데반이 순교하는 자리에 바울도 있었고 다메섹으로 더 많은 거짓말쟁이들에게 종교의 이름으로 심판하기 위해 바울은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그 때 하늘로 부터 빛이 무리를 덮쳤다. 바울은 본능적으로 당신은 누구십니까? 물었다. 그 때 바울에게 들려오는 음성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것이다. 바울이 믿고있었던 근간을 무너뜨리는 만남이었다. 더이상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만났고, 보았으며, 들었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완전히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예수님을 만나면 내가 자랑하던 모든것들이 산산히 부서져 내린다. 그 때부터 부활하신 예수님을 온전히 믿게 된다. 나는 진짜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나의 믿음의 기초는 예수님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그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
- 이형원전도사 19-04-26
-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행9:9)"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하게 되는 내용이 오늘의 말씀 가운데 나오고 있다.
그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권한을 받아서 그들을 잡아가두려고 했던
자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도로써 변화되는 그 시작은 그 분의 음성을 들으면서
부터 였다.
그는 그 음성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 못된 믿음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기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하여 그는 사흘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혼란을 정리하고 이제는 예수님을 전하는 자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만난 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다.
나 자신을 위한 삶에서 이제는 하나님을 위한 삶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그 믿음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예수님을 만났고 믿는다. 그러한 내가 예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내 삶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주님을 만난 자 다운 삶을 통해 예수님을 증거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