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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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금) 행전11장_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은

  • 느헤미야강
  • 20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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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수장격인 베드로가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그들과 먹고 마셨다는 소식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이슈가 되었습니다(1).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할례자들(유대 기독교인들)이 그 일로 베드로를 비난하였습니다(2~3).

베드로는 자기가 본 환상과 고넬료 일가에게

성령이 주어진 일을 소상하게 설명하였습니다(4~17).

결국 예루살렘 교회도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18).

고넬료 사건은 초대교회의 선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유대인과 같이 구원하신다는 것을 입증한

기념비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과 함께 복음이 이방인들 특히

헬라인들에게 널리 전파된 것을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19~30).

그 중심에 안디옥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초대교회의 해외선교를 감당하는 중심축이 될 교회였습니다.

스데반 순교에 이은 대박해로 흩어진 성도들이

처음에는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었지만,

그중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소수 몇 사람이 안디옥에 와서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20).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였기에,

많은 헬라인들이 믿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21).

주의 손이 함께 했다는 표현은 고넬료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셨다는 것과 같은 수준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안디옥에서의 이방인 선교를 기뻐하셨고 축복하셨습니다!

안디옥에서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소식은

다시 한 번 예루살렘 교회의 이슈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진상을 알기 위해서 바나바를 파송하게 되고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 것을 보고 기뻐하며

그들의 믿음을 격려해주었습니다(23).

여기서 다시 한 번 성경 기자는 바나바의 신앙과 성품을 강조하여 쓰고 있습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였습니다(24).

바나바는 불을 끄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바나바로 인하여 큰 무리가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이 일을 계기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섬기게 되고,

그때 바나바는 마음 속에 다소로 떠난 사울을 기억하게 됩니다.

사울은 다시 한 번 바나바의 인도로 교회의 중심 무대로 등장합니다.

사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의 큰 무리를 일년 간 함께 가르쳤는데,

그 결과 역사상 처음으로 안디옥의 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26).

 

본문이 한 가지 덧붙이는 기사는 안디옥 교회의 성숙하고도 넓은 마음입니다.

로마 황제 글?璨理嘲?/span>(41~54) 때 로마 전역의 여러 지역에서

수차례 일어난 흉년이 선지자 아가보에 의해서 예언되었는데,

유대에서는 그 횟수와 정도가 심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안디옥 교회는 비록 그들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가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돈을 모아서 사울과 바나바 편에 예루살렘 교회로 보냅니다.

이것은 훗날 안디옥 교회의 세계선교를 미리 암시하는 하나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안디옥은 당시 헬라 문화가 발달한 국제 도시로서

로마,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로마제국의 3대도시의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계선교를 위해서 한 교회를 여기에 준비하셨고

거기서 또한 세계선교의 지도자가 될 사울을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묵상1.

성령께서는 사도들과 신도들을 안전지대 바깥으로 밀어내어

그들로서는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고하고 고백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령께서 불가항력적으로 끌고 가시는데,

어찌 그것을 따라가지 않겠느냐고 증언했습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이방 도시로 흩어진 사람들을 통해

땅끝까지 복음을 밀고 나가십니다.

그 성령께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 성령께서 오늘도 우리를 안전지대 바깥으로 밀고 나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심을 믿습니다.

 

묵상2.

사도행전 11장은 그야말로 복음의 이방 세계 전파뿐 아니라,

이방인 교회의 탄생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의 기독교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그리스도인들이 등장합니다.

비록 이 명칭은 처음 안디옥에서는 조롱과 멸시에 찬 것이었겠지만,

그들이 그리스도 외에 어떤 것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인물은 바나바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역사의 중심무대에는 서지 않았지만,

언제나 역사의 흐름 속에 서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의 강조는 바나바의 성품과 됨됨이가 아니라,

그가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바울과 함께 1차 전도 여행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누가는 바울에게 집중하느라

바나바의 행적을 더 이상 추적하지 않습니다.

그는 바울의 조역으로 일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그가 분명 더 큰 사람일지 모릅니다.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조용히 뒤로 물러나는

바나바의 뒷모습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의 교회에 바나바와 같은 인물들을

많이 일으켜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에

바나바와 같은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형원전도사 19-04-27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11:26)"

      스데반의 순교 사건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많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 일단의 무리들은 안디옥으로 갔고 그것에서 예수님을 전하여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보냈고 바나바는 바울을 데리고 가서
      함께 동역하며 그 곳의 성도들을 위하여 사역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드디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세상 사람들로 부터 듣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른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리스도인이라 불러 주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들이 과연 그리스도인 이라
      불릴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가 교회 다닌다고 떳떳하게 이야기 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사는지
      아니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삶을 사는지 우리는 늘 조심하며 스스로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세상이 감당치 못할 자들로써 마땅히 그리스도인 이라 불릴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 삶의 모습이 주님의 영광이 되길 기도한다. 내 삶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있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 김성민목사 19-04-27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행11:24

      신학교에 입학하면 선배들이 신학적인 질문을 많이 던진다. 그중에서 하나가 “착한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느냐?”였다.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이 질문에 당황해서 말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 이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직 나에게 성령과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문득 그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답을 할 수 있었다. “예수님 믿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다. 오직 예수님 믿어야 구원 받는다.”

      사람의 착한 심성은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된 인간의 본성중의 한 부분이다. 그 본성만으로는 우리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오직 예수님의 흘리시느피를 통하여 그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 이 믿음을 곤고히 해주는 것이 우리 안의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을 통해서 이 시대에 우리는 믿음을 지켜갈 수 있다. 오늘도 착한 행실과 성령과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의 합당한 삶의 모습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