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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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월) 행전25장_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 느헤미야강
  •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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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전 25_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유대 총독으로 새로 부임한 베스도는 가이사랴의 총독 공관에 도착한 지

사흘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유대 지도자들을 만납니다.

그 때 유대 지도자들은 바울을 고발하면서

그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해 달라고 조릅니다.

실은 예루살렘에 이르기 전에 매복시킨 자객들을 통해

그를 살해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베스도는 바울이 로마 시민임을 고려하여 그 간청을 정중히 거절하고,

그를 고소하고 싶으면 가이사랴로 오라고 말합니다(1-5).

 

얼마 후에 베스도는 가이사랴로 돌아가고

유대 지도자들도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그를 따라 갑니다.

이튿날 재판석에 바울을 불러 세우니 유대인들은 여러 가지로 그를 고발합니다.

하지만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여 어떤 고발도 인정 받지 못했습니다.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겠느냐고 제안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이니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대답합니다.

이로써 바울을 해치려는 유대인들의 의도는 좌절되고 말았습니다(6-12).

 

며칠이 지난 후에 헤롯 대왕의 증손자인 아그립바 왕이

(그의 아버지와 구분하기 위해 아그립바 2세라고 부릅니다.

주후 50년부터 아빌레네 지방을 통치했습니다)

상견례 차 가이사랴로 내려 옵니다.

그가 베스도와 며칠을 지내는 동안에

베스도에게 바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베스도는 그 동안의 경위를 아그립바에게 설명했고,

아그립바는 그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음날 베스도는 바울을 재판정에 세우고

아그립바 왕이 신문할 수 있게 해 줍니다(13-27).

 

묵상:

누가는 총독 베스도와 유대 지도자들 그리고

아그립바 왕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면서

하나님의 활동에 대해 침묵합니다.

마치 신문 기사를 읽는 것과 같고

혹은 역사 기록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사도행전을 읽어 온 사람들은

역사의 전면에 드러난 사건만을 보지 않습니다.

역사의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고 계심을 잊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25장에 기록된 사건에서

하나님은 잠시 손을 떼신 것 같지만,

실은 동일한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역사의 모든 사건은 인간의 선택과 실수와 악의와

우발적인 사고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을 엮어서 뜻하신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것이 믿는 이들이 역사를 읽는 방법이요 뉴스를 읽는 방법입니다.

 

오늘도 이 눈으로 하루를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우연하게 보이는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읽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을 때라도

하나님의 전능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 이형원전도사 19-05-14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행25:25)"

      바울은 아무런 죄 없이 잡혀있다. 그리고 유대의 지도자들은 아무런 죄가 없는
      바울을 죽이고자 고발도 하고 나름의 계획도 세우는 것을 보게된다.
      하지만 베스도 총독은 그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다라고 선언하는 말씀이
      오늘의 말씀 가운데 나타나게 된다.

      마치 예수님께서 그렇게 잡히시고 죄 없이 고발 당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듯이
      바울 또한 그렇게 잡혀서 유대인들에 의해 고발당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걷게 된다.
      그 길이 때로는 십자가의 길이도 고난의 길이라도 그 길을 기쁨으로 걷게 된다.
      왜냐하면 실패 처럼 보이는 십자가의 길이 결국 최후 승리로 이어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황제에게 상소함으로 그의 복음전도를 이어가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게 되는 것을 보게된다.
      나의 삶에도 주님의 닮은 모습이 나타나길 원한다. 작은 것에도 억울해 하고 시시비비를
      따지기 보다는 그 일을 통해 전해질 주님의 나라를 먼저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있길 원한다.
      나의 삶이 주님의 삶을 닮아갈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엎드려 본다.
    • 김성민목사 19-05-14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행25:12

      바울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원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끝인 로마 말이다. 그런데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그런 바울에게 기가막힌 방법이 있었으니 자신을 죽이러는 유대인들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방법을 바울애게도 또 쓴것이다. 그런데 그 것을 바울은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이용해서 말이다. 자신을 고소한 유대인들이 바울이 해하지도 못했고 방해하지고 못하게 바울은 황제 앞으로 상소한 것이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 처럼 순결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했다.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하지만 그곳에서도 끝까지 복음을 전한다. 그리고 그의 사명을 완성한다. 예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지혜로워야 한다. 세상의 것들과 악한 것들보다 더 지혜로워야 한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 못하다. 노력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도 않는다. 아니다. 세상을 이기는 힘은 하나님께 있다면 그 힘을 구해야 할 것이고 쓰임받는 연장은 더욱 날카롭게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바라는 것은 오늘 나도 날카로운 연장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길 원한다. 그래서 세상을 이기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싶다. 부디 지혜롭게 하나님의 복음 전도자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