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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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목) 요한19장_십자가 대관식

  • 느헤미야강
  • 20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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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압력에 밀린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을 고문하여

유대인들의 동정심을 끌어 내려 합니다(1-3).

군사들은 그분께 자색 옷을 입히고

관을 만들어 씌우고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그런 다음 빌라도는 예수님을 유대인들 앞에 세우고는

자신은 그분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말합니다(4).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빌라도는, 자신은 빠질테니 유대인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제안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사형을 판결하고 집행할 권한이 없었기에

그들은 계속 총독을 압박합니다


빌라도는 빠져 나갈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을 알고

다시 예수님을 대면하여 당신은 어디에서 왔소?”(9)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모든 것이 정해진 것을 아시고 침묵하십니다.

답답해진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자신에게는 그분을 죽일 권한도 있고

풀어줄 권한도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에게 사정해 보라고 말합니다(10).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당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답하십니다.

결국 이 일에서 손을 떼려는 빌라도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예수님은 십자가 처형에 넘겨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셔서 십자가에 달리십니다(17).

십자가 위에는 죄패가 걸려 있었는데,

당시에 통용되던 세 언어 즉 히브리어와 헬라어와 로마어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19)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 달라고 요쳥했으나, 빌라도는 그 요청을 무시했습니다.

이것도 역시 우연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유대인의 왕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병사들은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의 겉옷과 속옷을 나누어 가집니다.

이로써 시편 2218절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 아래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이 있었고

사랑하는 제자”(이 복음서를 쓴 요한으로 추정됩니다)가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제자에게는 ,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이후로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예언이

당신에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시고(28)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도 역시 시편 6921절에 나오는 예언을 생각하고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해면에 적셔서 그분의 입에 가져다 대니,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는 운명하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압박과 빌라도의 비겁함으로 인해

십자가에 달려 죽는 비참한 운명을 만난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의 예언을 따라 이루어진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아셨고 당신에게서

그 모든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하셨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고통을 견딜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곧 시작되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린 죄수들을

빨리 죽게 하여 십자가에 매달린 시신 없이 유월절을 맞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 요청을 받아들여 군사들은 죄수들의 다리를 꺾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지독한 고문으로 인해

이미 운명하셨기 때문에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다만, 병사 중 하나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릅니다.

죽음을 확인하려는 조치였습니다.

그로 인해 그분에게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습니다(34).

이 모든 일들도 역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따라 일어난 것입니다.

그 때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넘겨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했고,

니고데모와 함께 그분의 시신을 돌무덤에 매장합니다.

 

묵상: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영광 받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을 이루는 것이요,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당신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유대인의 영원한 왕으로서의 사명을 이루신 것입니다.

메시아라는 말은 우리 말로 하자면 이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유대인의 왕이 되신 그분은 또한 모든 인류의 왕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죄패는 당시에 통용되던 모든 언어로 쓰인 것입니다

    • 김성민목사 19-04-12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19:3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 후에 “다 이루었다”는 말과 함께 영혼이 떠나갔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확인 하기 위해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신 후에야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예수님의 몸은 흰 새마포 옷에 싸여 돌무덤에 두었다. 예수님은 영혼육이 완전히 죽으셨다.

      이 죽음 앞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슬퍼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께서 다시 사실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돌무덤에 예수님을 유대인의 장례법 대로 장사하였다. 예수님은 돌무덤에 묻히신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라면 아마도 지금의 성경은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죽으셨고 완전히 다시 사셨다. 그 사실을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오백성도와 가족과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셨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이 부활 앞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더이상 슬퍼하지 않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갔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의 전도자로 변화되었다.

      완전히 죽으셨다가 완전히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온전히 믿게 된 복음의 전도자들 처럼 예수님의 놀라운 부활하심의 은혜가 오늘 나에게도 경험되어지길 원한다. 그래서 내 믿음이 살아 숨쉬는 믿음이 되기를 원한다.
    • 이형원전도사 19-04-16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요19:12)"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많은 군중들은 환호하며 그 분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환호가 곧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외침으로 변하기 까지 그리 오랜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왜 그렇게 환호하며 환영했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군중으로 변화 된 것일까?

      어쩌면 이러한 유대인들의 변화를 보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을 슈퍼 히어로쯤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분으로만 생각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기대와 다른 모습에 실망했을 것이고 또 그가 했던 모든 말씀을 불신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삶 속에 때로는 예수님을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 쯤으로 생각 할 때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기도 하고 도움을 주시는 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만을 위한 예수님을 바랄 때가 많다. 그러다가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이 유대인들 처럼 예수님을 불신하기까지 한다.

      내 삶에 주님의 도우심이 항상 함께하길 사모하며 또 그러시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것이어야 하고 또한 주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기를 바란다.
      이러한 우선순위와 지향점이 늘 한결같이 변함없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