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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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금) 행전5장_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도전들

  • 느헤미야강
  • 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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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를 비롯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서 공동체와 나누었는데,

5장은 그 대열에 들어간 또 한 부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입니다.

그들도 소유의 땅을 팔았고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왔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속였다는 베드로의 말 앞에서 둘 다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조금이라도 바친 것이 가상하지 않은가 하는 쪽으로 동정론을 펼만하지만,

본문에는 그럴 여지가 조금도 없습니다.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면 타락할 위험이 상존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왕성한 자리에 마귀의 역사도 들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초기에 이 문제를 크게 다루셨습니다.

소유를 팔아 바치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모든 교인의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은혜 받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행위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그들이 얻은 영예를 얻고 싶지만,

그 대가를 치르고 싶지는 않은 자들이 생겼습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수없이 일어났고 또 일어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엄중히 다루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속이는 일이었습니다.

희생 없이 보상을 얻으려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아니 보상에 마음이 기우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은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결과,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성장하면서 안에서 일어난 도전이었고,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다룬 것은 베드로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교회는 이 도전을 다룬 후에 더욱 성장하였고 세상 앞에서 두려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를 누가는 이렇게 적는다: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14).

걷잡을 수 없는 복음 전파가 일어나자

다시 공회원들은 마음에 일어나는 시기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17).

예수님에 대해서 보였던 것과 똑 같은 반응이었습니다(27:18).

그들은 다시 사도들을 옥에 가두지만,

주의 천사는 밤에 그들을 밖으로 끌어내면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20).

공회원들은 이튿날 새벽,

가두어둔 사람들이 없어진 것을 알고 소동하게 됩니다.

결국 사도들이 풀려나 성전에서 그 새벽에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군중들을 무서워하는 가운데 다시 끌어와 공회 앞에 세웠습니다.

사도들의 반응은 조금도 변함이 없고 타협할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29).

사도들은 저들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을 본 사람들이었습니다(30).

이제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죄사함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자신들의 삶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31).

사도들이 증인이었고 사도들만이 아니라,

모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님도 증인이셨습니다(32).

놀라운 선언입니다. 그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보혜사 성령은 그들과 함께 하고

성령님께서 그들 안에서 증거하셨습니다.

 

공회는 두 달 전 그리스도를 죽이기로 결의했을 때와 같이,

사도들도 죽이려고 하지만,

가말리엘의 말이 설득력을 얻어 사도들을 채찍질하고 위협하고 석방하였습니다.

그 때 당시에 가장 존경받던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나가게 한 다음에 중재를 시도합니다(35-39).

그는 과거에 메시아를 자처하며 사람들을 현혹시켰던 두 사람의 예를 들어

사도들을 그냥 내버려 두자고 제안합니다. 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 사람들의 이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망할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여러분은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없소.

도리어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봐 두렵소”(38-40).

의원들은 가말리엘의 말에 설득되어 사도들을 때린 후에 석방시킵니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41) 물러 나와 쉬지 않고 전도하고 가르쳤습니다.

 

사도들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기뻐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습니다.

제자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으십니까?

겁쟁이에 불과했던 사도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요한을 제외하고는 다 도망해버렸던 자들이 아닙니까!

이제 그들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사는 자들이 되었고,

주님을 위해서 채찍질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눈에서는 다 감사의 눈물이 흘렀을 법합니다.

주님, 제가 누구관대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이렇게 고난 받는 자리에까지 저를 세우시고 인정해주십니까?”

하는 은혜와 감격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이상이 교회의 밖으로부터 오는 도전이었습니다.

안팎의 도전을 극복한 교회는 더욱 힘있게 성장했습니다.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이처럼 안팎의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성장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고

세상의 공중 권세 잡은 자, 마귀와의 영적 싸움입니다.

 

이 도전들은 다 교회의 본질적 부르심인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교회 안팎의 도전들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까? 경험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적당히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 우리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은혜를 베푸시사 안팎의 도전들을 극복하면서

그리스도의 순전한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 김성민목사 19-04-19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행5:32

      사도들은 어떤 사람인가? 기적을 베푸는 사람?? 기득권 세력과 맞서 싸우는 사람?? 오늘 말씀을 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 다시 살아나심을 그대로 지켜본 증인들이다. 그래서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를 사도로 뽑을 때에도 예수님의 공생애를 함께하고 그 부활하심도 목격한 사람이라는 기준이 있었다. 이처럼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행적을 목격한 사람이고 이것을 가감없이 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겼으며 성령받은 것이다. 말씀을 살펴보니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장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섬겼으며 성령님을 의지하였다.

      사도들은 너무도 단순한 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사도와 같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행적을 목격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 성령님도 반드시 주실 것이다. 사도들과 같은 신앙을 가질 수는 없을 지라도 날마다 그들의 신앙을 본받아 믿음의 사람이 되거자 한다면 그들을 닮은 신앙인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믿음이 조금씩 자라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