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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토) 행전6장_교회위기와 사도들의 모범
- 느헤미야강
- 201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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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는 문제가 없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와 같은 모습있던 예루살렘 교회에
조금씩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교회가 아무리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넘쳤다고 해도,
제자는 계속해서 많아졌지만(1) 여전히 지상의 교회였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첫 사례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었다면,
두 번째 사례는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과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1절) 사이의 갈등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엄청난 속도의 숫적인 성장의 이면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교회 안의 두 이질적 그룹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교회의 도움을 받던 과부들 가운데 헬라파 과부와
히브리 파 과부들 사이의 갈등이었습니다.
헬라파는 외국에서 태어난 유대인들로서
헬라어를 사용하고 헬라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히브리파는 보다 전통적인 사람들로서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문화권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속한 가난한 과부들은
교회에서 나누어 주는 구제비로 생활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구제비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불만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인들”이 구제비 배분에 있어서
차별을 당한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1절).
사도들이 그 불만을 들어주고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 하다 보니
말씀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 사역에 쏟아야 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사도들은 문제 자체인 히브리파 과부와 헬라파 과부들 사이의 갈등을 보기 보다,
또는 원망하는 헬라파 과부들을 책망하기 보다,
자신들이 너무 많은 일들을 주관함으로써 일어난 문제로 봄으로써
문제의 근원을 살폈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2).
자신들이 해야 하는 사역의 우선순위 그리고
집중해야 할 사역의 본질이 말씀을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임을 그들은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주관하던 봉사의 일(구제)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
일곱 집사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일곱 집사의 조건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입니다(3).
이런 사도들의 처방에 대하여 제자들의 무리는 기뻐했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교회의 첫 집사들로 선택했습니다(5).
문제 자체와 문제의 뿌리를 분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것은 성장하면서 점점 더 많은 일의 압박에서 사도들을 벗어나게 해주었고,
교회를 규모에 맞는 리더십 구조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사도들이 결코 구제와 나눔 역시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 일로 하나님의 말씀은 더 왕성하여졌고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고,
심지어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7).
제사장들은 희생제물을 드리는 일에 헌신된 사람들이었고,
여전히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제사가 드려지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허다한 무리가 '이 도에 복종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사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기자는 특별히 그들이 믿었다고 쓰는 대신,
'이 도에 복종하였다'고 쓰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의 이름을 보면 모두가 헬라식 이름들입니다.
이들 모두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즉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도 헬라식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었으므로
이들이 100% 헬라파 유대인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들 중 스데반과 빌립의 사역을 사도행전은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이밖에 우리가 주목할 한 인물은 니골라인데,
그는 후에 안디옥 출신의 이방인으로서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초대교회를 어지럽혔던 이단인 니골라당을 시작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계 2:6,15).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고,
자유민들의 회당에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즉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가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것을 능히 당할 자가 없자
그들은 거짓 증인을 매수하여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했다고 하여
잡아 공회에 넘겨 주었습니다. 공위에 앉은 사람들이 보았을 때,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는 것은 그의 경건에 대한 놀라운 증거입니다.
사도들이 교회 안의 문제를 해결하자 교회는 다시 큰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사도들의 문제 해결은 단지 실용주의적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영적 조건들을 집사의 자격 요건으로 세웠습니다.
집사들이 봉사의 직무를 감당하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스데반은 그들의 사역이 봉사의 사역임에도,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능력있는 복음증거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임을 보여줍니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는 것은 그 직무가 목사나 장로 혹 집사일지라도
영적 조건에 합당해야 한다는 것을 본문은 가르쳐줍니다.
이런 지도자들은 그간의 사도들의 말씀 사역을 통해서 만들어진 열매이고,
교회는 이런 지도자들을 알아보고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묵상:
성령의 ‘임재’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 한
성령께서는 언제나 우리 안에 함께 계십니다.
하지만 성령의 ‘충만’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내 안에 계시는 성령과
내가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서 충만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충만하게 역사할 때면 인간적인 모든 약점과 허물은 그 안에 감추어집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이 성령을 통해 일어납니다.
반면, 성령의 충만이 약해지면 감추어졌던 허물과 약점이 드러납니다.
그렇기에 매일 성령께 자신을 내어 드리고
그 능력에 사로잡혀 살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령께서 충만하게 역사하면 외모에서조차 광채가 발산되곤 합니다.
그것은 공동체 즉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교회 안에 충만할 때면 사람들로서는
행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허물과 약점이 덮어집니다.
반면, 성령의 임재가 충만하지 않으면 인간적인 요소들이 흉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럴 때 인간적인 계산과 전략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문제는 성령의 방법을 따라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사도들이 보여 준 모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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