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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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금) 눅14장_제자가 치를 대가
- 느헤미야강
- 2019-03-08
- 407 회
- 2 건
1. 1-24절: 잔치 자리에서
주님은 안식일에 바리새파의 한 지도자에게 초대를 받아
그 집에서 식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1).
아마도 그들은 주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고창병(수종)든 한 사람을 그 자리에 데려다 놓았던 것 같습니다(2).
주님은 함께 앉은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들은 모두 주님에게 흠을 찾기 위해서 혈안이 된 사람들입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한가 물으셨습니다(3).
모세의 율법에 안식일에 사람의 병을 고쳐주지 말라는 규정은 분명히 없습니다.
그들이 매여있는 것은 전통이었습니다.
그 전통은 율법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 초대 자리에서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상석을 차지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셨던 것 같습니다(7).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상석에 앉지 말고 도리어 말석에 앉으라고 교훈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발견하고 상석으로 가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상석에 있다가 중요한 사람이 와서 말석으로 밀려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주님이 강조하신 것은 스스로 높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고 높여주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11).
성도들이 추구해야 하는 삶은 바로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그리고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삶입니다.
잔치에 대한 가르침이 계속됩니다(12~14).
사람을 청하려면 되갚을 수 없는 사람을 주로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본성상 좀 더 영향력 있고 좀 더 부유하고
좀 더 성공한 사람과 어울리고 그런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그런 사람들을 중요하게 여겨서 초청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거꾸로 하라고 하십니다.
왜그렇습니까?
다시 갚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베푼 모든 것은
하늘에 보화를 쌓아둔 것이고(12:33),
하나님이 계산해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것을 바라고 사는 것이 성도의 합당한 삶입니다.
잔치에 대한 또 하나의 가르침을 주님은 비유로 하셨습니다(15~24).
하나님 나라 잔치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함께 식사를 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한 한 사람의 질문으로 야기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의인들의 부활 시에 갚음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하시자(14),
당연히 그 자리에 있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 한 사람이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유대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또 바리새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당연히
그 자리에 있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 비유를 말씀 하셨습니다.
주인이 큰 연회를 배설하고 사람들을 초청했는데,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저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청함을 거절하였습니다.
주인은 노하여 종에게 이르기를, 거리와 골목으로 가서 가난한 자,
병든 자, 소경, 저는 자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왔으나 아직도 자리가 차지 않자
주인은 자리를 가득 채우기 위해서 길과 산울가로 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청함을 받았으나 거절한 자들의 핑계는
그 자체로 나쁜 것들이 아닙니다.
비즈니스나 개인사가 그 이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그들은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비유는 천국의 초청에 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청함을 받지만,
그들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삶에 분주해서 이 초청을 거절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게 될 자는
민족적, 종교적 신분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잔치의 주인인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고,
주님 자신에 대한 태도에 달린 문제입니다.
2. 25-35절: 제자의 성품
주님을 따르는 이들은 늘 많았습니다(25).
주님은 따라오는 허다한 무리를 향해 몸을 돌리시고
주님을 따라오는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세 가지로 말씀하셨는데,
1) 주님보다 가족, 심지어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면 안 되고(26),
2)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와야 하며(27),
3) 모든 것을 다 부인하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33)는 것입니다.
26절에 미워한다는 말은 셈어에서 덜 사랑한다는 표현입니다(창29:30~31).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주님이 모든 관계에 우선한다는 결단이며, 고백을 요구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제자도의 대가(비용)에 대한 교훈이 바로 그 설명입니다.
제자가 될 자는 십자가라는 비용 계산을 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이 제시하신 제자의 조건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33).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더 이상 자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고백이 없이는 따라오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단지 목사나 선교사에게만 주신 명령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신자들을 향한 주님의 엄중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가?
빛나는 것이 다 금은 아니며, 소금이라고 다 소금이 아닙니다(34~35).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게 되면 버려질 수 밖에 없다는 말씀은
제자답지 않은 제자들은 다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 이런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까?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는 것이 타락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입니다.
그 수가 비록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말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구하시시오.
우리는 그 말씀을 들어야만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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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3-09
-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14:33
누군가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스승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배운기 위해 스승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모든 소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 어느것도 예수님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영생에 대하여 묻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청년은 그 모든 계명을 지켰노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의 중심을 보시고 다시 말씀하신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쫓으라.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부자 청년은 계명을 지켰지만 재물이 예수님의 말씀보다 앞서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쫓지 못하고 재물이 많은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나의 삶속에서 이러한 경험을 할 때가 너무도 많이 있다. 예수님을 따라야 할 지 내가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따라야 할지 결정해야 할 때가 있다. 그 때 나의 믿음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진심으로 그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느냐가 너무도 중요하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로써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말과 행동 마음까지 예수님께 맡기는 것이다. 나의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하며 나에게 주어진 상황들을 예수님과 함께 이루어 가는 것이다. 그 때 나는 혼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다. -
- 이형원전도사 19-03-12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14:2)"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인하여 그 초대에 응하지 못하였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밭을 사서 또 소 다섯겨리를 사서, 장가를 들어서
갈 수 없다고 그들이야기 했다.
주인은 그들 대신 골목에 있는 가난하고 몸이 불편하고 맹인들과 저는 자들로
그 잔치 자리를 채우게 함을 보게 된다.
특별이 이 말씀은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을 향한 말씀이면서도 또 여러가지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다가
온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핑계할 것이 많이 있다. 학업 때문에, 직장이 바뻐서, 가족의 문제로
하나님의 초대는 후순위로 물러날 때가 많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보다 우리 삶에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핑계할 수 있지만 그 핑계가 우리에게 의로움을 더하여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이러한 은혜의 초대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 자리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자리가 될 것이다.
세상의 바쁜 많은 일들이 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먼저 주님의 말씀을 우선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