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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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금) 요한2장_새것이 왔도다
- 느헤미야강
- 2019-03-22
- 526 회
- 2 건
요한 2장_새 것이 왔다
1-12절: 새로운 포도주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혼주는 예수님의 친척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집 주방에서 일을 거듭니다.
당시 혼인 잔치는 일 주일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잔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포도주였습니다.
음료수의 역할뿐 아니라 잔치의 흥을 돋구는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간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패닉에 빠졌을 것이고,
잔치는 파장을 맞이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 때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3절)고 상황을 보고합니다.
마리아는 잔치집이 당한 위기 상황을 예수님께 알리고
그분의 처분에 맡긴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 생활에 대한 아주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기도로써 자신의 사정을 아뢰고 그분의 처분에 맡길 것입니다.
해법은 그분에게 있습니다. 내가 해법까지 주문 해서는 안 됩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말에 예수님은 처음에는 냉담하게 반응합니다.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4절)라는 말은
당신의 정체를 드러낼 때를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리아의 신뢰에 응답합니다.
유대인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도록 준비한 물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도록 한 다음 그 물을 떠다가 주라고 하십니다.
일꾼들이 그대로 하니 어느 새 그 물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과거에는 맛보지 못했던 최고의 포도주로 변한 것입니다(10절).
이로써 정결례를 위한 항아리가 모두 포도주 항아리로 바뀌었습니다.
알고 보면, 더 큰 혼란이 발생한 것입니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최고의 포도주가 눈 앞에 있는데,
손 씻을 물이 없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을 없애 버리고
포도주 항아리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 일어날 영성의 변화를 암시합니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인해 율법은 효력을 상실합니다.
율법이 제공해 온 포도주는 이제 동이 났습니다.
그 자리에 새로운 질 좋은 포도주가 들어 왔습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받았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겨났다”(1:17)고 했는데,
그 전환의 사건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13-22절: 새로운 성전
유월절이 가까오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분은 성전 뜰(이방인의 뜰)에서 장사하고 돈 바꾸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십니다.
그들은 성전 제사에 쓸 제사용 짐승을 팔고 있었고
성전에 드릴 헌금용 동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들이 없으면 성전 제사는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제사와 그것을 둘러싼
타락한 종교 권력을 향하여 채찍을 드신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유대 사람들이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소?”(18절)라고 묻습니다.
그런 도발을 할 사람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그만한 권세를 받았을 것이니,
그 증거를 보여 달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19절)고 답하십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야
그것이 당신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임을 깨달았습니다.
즉 예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은 끝났다.
이제 새로운 성전이 세워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새로운 성전은 바로 당신 자신을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성전이십니다.
23-25절: 중심을 보시는 분
유월절 기간 동안에 예수님은 많은 이적을 행하셨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몸을 맡기지 않으셨다”(24절)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기”(25절) 때문입니다.
시몬과 빌립과 나다니엘을 보시고 그 내면을 보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아직 미숙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당신을 맡기지 않으신 것입니다.
묵상:
예수님은 전통과 인습과 규율과 교리와
율법의 굴레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십니다.
그런 것들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를 안전한 영역 안에서
의롭고 거룩하게 살게 하려고 마련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너무도 자주, 너무도 쉽게 제 역할과 한계를 벗어납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그것에 갇히고 얽매이게 됩니다.
그 안에서 생명력을 잃고 율법적 준수에 목숨 걸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되면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의 심판자로 행세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적인 준수가 아니라 성령과 함께 하는 새로운 영성을 소개하십니다.
율법적 준수는 잔치가 되어야 할 우리의 삶에서 모든 기쁨을 앗아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새로운 포도주를 가져 오셔서 그 기쁨과 흥을 되찾게 하십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면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삶의 길을 여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새로운 성전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산 제사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럴 때 “은혜와 진리”(1:17)가 흘러 넘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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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9-03-23
-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2:11)"
예수님의 첫 표적이 나타난다. 이처럼 첫 표적이라고 거론되고 있는 것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첫 표적에 대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 표적은 누군가를 치료하신 일도 아니었고 귀신을 쫓으신 일도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풀어 먹을 것을 주신 기적도 아니었다.
어찌보면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 잔치에 필요한 포도주를 위해 기적을 베푸셨다.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 기적을 첫번째 표적이라고 지칭한 것은 그 의미 때문일 것이다.
새 포도주는 새롭게 맺어진 언약을 의미한다. 이제 구습을 버리고 새로운 약속을 따라야 할
첫시작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포도주의 표적이 첫 표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먼저, 우리에게는 포도주로 변화하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 처럼 죄인인 우리가 의인으로 인정받는 사건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때 부터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다.
나에게는 그러한 순간이 있었는가? 되돌아 보게 된다. 혹 포도주로 변하는 경험을
하고서 다시 물로 돌아가려고 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게된다.
이제 거듭남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로써 예수님만을 의지하여 새로운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길 기도한다. -
- 김성민목사 19-03-25
-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요2:5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대로 하라는 것 만큼 쉽고, 어려운 일이 없다. 쉽다는 것은 정답이 있다는 것이 쉬울 것이고, 어렵다는 것은 뻔히 그것이 정답임에도 불구하고 순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항상 옳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지켜가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따라가야 할 모습이다. 그러나 항상 무언가가 우리를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내 마음에 더 좋은 것이라 판단 되어지는 그것 때문에 대부분은 정답을 피해간다.
그렇다면 결국 나의 마음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것이다. 나의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있으니 곧 성령님이시다.
사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는데 어떻게 내 마음을 관리할 수 있겠는가? 항상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을까? 성령님의 함께하심과 도우심으로 그렇게 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믿음이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이심을 믿으니 날마다 도우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겠다. 그렇게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