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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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월) 요한 4장_참된 생수, 참된 양식

  • 느헤미야강
  •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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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에 이어 두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니고데모와는 반대편 끝에 존재하는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주님은 이 두 사람을 통해서 인간 모두를 다루십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두 사람은 말할 수 없이 멀고 차이가 많지만,

주님이 보실 때 두 사람은 똑같이 거듭나야 하는 죄인입니다.

 

1-15: 생수의 근원

예수님은 유대 광야에서의 세례 사역을 접고 갈릴리로 돌아 가십니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기 위해서는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 가야 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

요단강 주변의 광야길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차별의식을 반대하셨기에 사마리아를 통과하십니다.

그러던 중에 수가라는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곳에 야곱이 판 우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우물에서 쉬고 계시는 동안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때는 오정쯤”(6) 되었습니다.

그 때 어떤 여인이 물을 길러 옵니다.

한낮에 물을 길러 나왔다는 말은

그 여인이 다른 여인들과 마주치기를 꺼렸다는 뜻입니다.

그 여인이 물을 길러 하자 예수님이 마실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

그 여인은 유대 남성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는 것에 깜짝 놀랍니다.

유대 남성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에서는 구할 수 없는

진정한 생수가 당신에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물이 필요한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그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그 여인은 야곱의 우물물로는 채울 수 없는

영적 갈증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4).

 

16-26: 참된 예배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가서 남편을 데려 오라고 하십니다.

그 여인의 숨겨진 문제를 찌르신 것입니다.

그 여인은 다섯 번이나 남편에게 버림받고

지금 여섯 번째 남자에게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남자들에게 거듭 버림 받았지만

누구에겐가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의 숨겨진 과거를 예수님이 알고 있음을 보고

그 여인은 예수님을 예언자라고 생각합니다(19).

그리고는 영적인 질문을 꺼냅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 있는 성전에서 예배 드려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유대 사람들은 시온 산에 있는 성전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누구의 말이 맞느냐고 묻습니다(20).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24)고 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령과 함께 하는 예배를 원하시며,

그런 예배라면 언제, 어디서 드리든 상관 없다는 뜻입니다.

 

27-42: 참된 양식

먹을 것을 사러 갔던 제자들이 돌아와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랍니다.

그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여인은 동네 사람들로부터 소외 당했던 사람인데,

예수님이 그리스도일지 모른다는 사실로 인해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을 소외시킨 동네 사람들에게 찾아가 말을 겁니다.

 

그러는 동안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음식을 내어 놓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32)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그게 무엇일까 궁금해 합니다.

러자 예수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34)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영적인 양식을 말씀하십니다.

육신적인 양식이 육신에 활력을 제공하듯,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이루는 것은 진실로 살맛나게 합니다.

그 일이란 잃어 버린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추수에 비유하십니다(35-38).

 

수가 동네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청을 받아 그 동네에서 이틀 동안 머무십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우리가 믿은 것은, 이제 당신의 말 때문만은 아니오.

우리가 그 말씀을 직접 들어보고,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았기 때문이오”(42)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도의 정석을 봅니다.

전도는 먼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은 그 사람이 직접 예수님을 만남으로 가능해집니다.

우리의 증언과 간증은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매개일 뿐입니다.

 

43-54: 말씀으로 치유하시다

이틀을 지내시고 주님은 갈릴리로 가시는데,

미리 말씀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에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믿었고

주님의 말씀을 더 듣기를 원하여 함께 계시기를 구했지만,

주님의 고향인 나사렛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을 때에는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절벽으로 끌고가 떨어뜨려 죽이려 했었습니다(4).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45절은 갈릴리 사람들도 주님을 영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영접한 것은 명절에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들의 영접이 결코 믿음의 발로가 아님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왕의 신하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버나움에 사는 왕의 신하는 자기 아들이 거의 죽게 되자,

예수님이 갈릴리로 돌아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주님은 그에게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책망하신다(48).

이것이 바로 갈릴리 사람들과 이 왕의 신하의 공통점이고

인간의 자연적 성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가나에서 행하신 두번째 표적인데,

이것은 주님께서 직접 가시지 않고 고쳐주셨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신 사건과 비슷하지만 다른 사건입니다, 8:5~13; 7:1~10).

왕의 신하는 믿고 돌아갔는데,

나중에 하인들이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아이는 주님이 말씀하신 그 순간에 나았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결국 그와 온 집이 다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해서 두번째 추수를 하셨습니다.

 

묵상:

우리의 육신은 매일 적당한 양의 음식과 음료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육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고

삶을 정상적으로 영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고

음식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당신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채워질 수 있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나누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영적으로 예배 할 때

우리 내면의 빈 자리는 채워질 수 있고,

그럴 때 영적 갈증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예배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하려는 열정을 불어 넣어 줍니다.

그것은 영적인 음식처럼 우리의 삶을 활력으로 채워 줍니다.

 

오래전에 있었던 어느 중년 남성의 고백이 기억납니다.

새벽 일찍 일터에 나가 일하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와 식사를 하고

TV 뉴스를 보다가 잠을 자고 다음 날 새벽에

다시 일터에 나가는 삶을 반복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도무지 사는 낙이 없다고,

아무 재미가 없다고,

그냥 무료하고 공허하다고 했습니다.

 

마치 수가 성의 그 여인을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참된 예배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얻을 수 있는

영적 음료와 영적 양식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 사귐을 추구합니다.

성령과 함께 동행하며 오늘도 그분의 뜻을 찾습니다.

 

똑같은 일, 반복되는 일에

동행하고, 사명이 곁들여지면

매일이 창조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묵상2.

 

아이의 문제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주님 앞에 나오지 않을 사람,

삶이 윤택하고 문제가 별로 없을 이 사람이

주님을 만나게 되는 방식은 아이를 통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방식으로 위기를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더욱 바라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복음이 약속하는 생수는 위기가 없는 삶이 아니라

위기를 통해서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께 나아가는 삶입니다.

    • 이형원전도사 19-03-26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요4:42)"

      예수님을 진짜로 만나게 되면 그 분이 바로 구주시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러한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게 된다.
      오늘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러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된다.
      처음에는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나왔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함께 하는 시간을 들을 통해
      이제 더 이상 여인의 말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만난 그 경험을
      통해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믿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나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된다.
      여인의 말만 듣고 믿는 믿음은 흔들리기 쉽고 또 의심이 들기 쉽다.
      하지만 직접 만나서 그 말씀을 듣고 그가 행하는 일들을 목격한 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믿음이 흔들리거나 의심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전해주는 복음, 누군가가 고백하는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내가 만나고 내가 깨달은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한다.
      주님을 만난 그 경험이 어느 한 시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는 경험이 되길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