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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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화) 요한 5장_아버지의 권세를 가진 아들
- 느헤미야강
-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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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다시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십니다.
성벽으로 둘러 싸인 예루살렘에는 몇 개의 출입문이 있었는데,
그 중에 ‘양의 문’이라 불리는 문이 있었습니다.
그 곁에 베드자다(혹은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에는 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가끔 연못 물이 움직이는데,
그 때 가장 먼저 뛰어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든 낫는다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으로 가셔서
38년 동안 병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을 찾아가십니다.
그는 그 연못가에서 오랜 세월을 지냈지만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기에 치유의 이적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낫고 싶으냐?”(6절)고 물으십니다.
그 병자는 물이 동할 때 물 속에 자신을 던져 줄 사람이 없어서
낫고 싶어도 나을 수가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 가거라”(8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연못에 희망을 걸고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에게서 희망이 왔습니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침상을 걷어 가지고 집으로 가던 그 사람에게
안식일에 금지된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10절).
그 사람은 “나를 낫게 해주신 분이 나더러,’
네 자라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 하셨소”(11절)라고 답합니다.
그에게는 율법보다 자신을 고쳐 주신 그분이 더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다시 만나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그리하여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여라”(14절)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그의 질병을 고쳐 주신 이유는 죄를 즐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게 살아가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은혜를 져버리면 더 불행한 결과에 이를 수 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고 하여
그를 미워하고 박해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17절)고 답하십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했다 하여
예수님을 더욱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과 당신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19-30절).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만 하고 주시는 말만 한다는 겁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늘 아들과 함께 하시고 모든 것을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시려는 모든 일을 아들에게 맡겨 행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아들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아들도 섬겨야 합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아버지 안에 참된 생명이 있듯, 아들에게도 참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당신의 증언이 참된 이유를 밝힙니다(31-38절).
먼저는 세례 요한이고(33~35)
예수님의 행하신 일이며(36),
하나님 아버지의 증거와(37~38)
구약 성경 특별히 모세의 증거(39~40, 45~47)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많은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오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심판날에 그들은 아무 변명을 할 수 없습니다.
이들이 이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나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지 않고
사람에게서 오는 영광과 인정을 구하기 때문입니다(44).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입니다(42).
예수님 자신이 이들을 하나님 아버지께 고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믿고 의지한다고 하는 모세가 그들을 고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세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모세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썼는데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묵상1 :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을 향해 ‘아바’라고 불렀습니다.
현존하는 문헌 증거로 볼 때 예수님 이전에는 누구도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바’라는 호칭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독생자”라는 말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독점적인 친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사랑의 관계 안에 있는 아버지와 아들은 별개이지만
또한 하나이듯 예수님은 하나님과 그런 관계에 계십니다.
그와 같은 인격적 합일 상태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행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하나님은 예수님과 같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드러나셨습니다.
예수, 그 이름이 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묵상2;
불신은 주님 외에는 못 고치는 영적인 암입니다.
38년의 세월을 불치의 병으로 고생한 사람이
낫기를 소망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을 통해서 주님은 유대인들의 영적 질병인 불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하나님은 없습니다.
온통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에 대한 생각 뿐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자신들이 너무나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럴 수 있을까요?
이럴 수 있습니다.
너무나 그럴 수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했고, 구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왔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온갖 사람과 사람에 대한 생각과 인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 마음이 즐거워지십니까,
아니면 사람의 인정과 영광을 생각하면 머리가 잘 돌아가십니까?
본문은 우리 자신이 38년된 병자는 아닌지 돌아볼 것을 도전합니다.
불신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믿음을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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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3-27
-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5:6
베데스다라 하는 못에는 많은 병자, 맹인, 다리저른사람, 혈기마른 사람들이 누워서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천사가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이때 가장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병이 낫기 때문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병을 낫고자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리고 몸을 낫게 해주는 오직 한 사람이 되기위해 무한경쟁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 똑같지 않은가? 이곳에서도 강자와 약자는 나누어져 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한 병자를 만나주셨다.
이 병자는 38년동안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걸을 수 없어 누군가 그 못에 넣어주지 않으면 절대 병이 나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없다. 지금까지 38년동안 병이 낫는 못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그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런 그를 예수님께서 만나주셨다. 그리고 말씀 하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의 오랜 소망은 병이 낫는 것이다. 이는 육신의 병 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이기도 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깊은 패배감이 38년동안 축적되어 있으니 아마 몸도 마음도 큰 병을 앓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신 것이다.
병자는 몸의 질병만 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몸과 마음을 고치셨다. 오늘도 경쟁사화 속에서 끝없는 실패와 절망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그의 삶이 회복될 뿐 아니라 그이 마음도 어루만저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기대하지 못했지만 더 큰 것을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그런 예수님을 오늘도 의지라며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야 하겠다. -
- 이형원전도사 19-03-28
-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5:6)"
예수님께서 38년된 병자를 주목하시고 그에게 먼저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에게 낫기를 원하는지를 물어봐 주고 계신다.
그 병자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는지 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대로
자신을 먼저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하소연 함으로
낫고자 하느냐에 대한 대답을 대신한다.
그런 병자를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를 고쳐 주신다.
그리고 그 병자는 이제는 낫게 되어 자리를 들고 걷게 되었다.
이 병자는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오시고 능력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심을 경험했고 그 후에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담대하게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님꼐서는 아퍼서 신음하고 있는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시는 분이다.
그리고 우리의 신음을 들으시고 낫게 해주시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이 있는 자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게된다.
나는 과연 주님을 자랑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또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만난 예수님을 기쁘게 여기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많은 신음가운데 응답해 주셨던 그 분을 기억하고 또 그 예수님을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삶을
살아가길 기도한다.
